'교토작가'로 유명한 모리미 토미히코의 작품은 [유정천 가족]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에 해당하는 교토라는 곳은 유서깊은 도시에 맞게 수많은 일본의 전설과 설화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작가는 그런 교토에 살면서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소설들을 쓰면서 일본의 전설들을 현실의 사건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일본에서는 대단히 인기있는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일본 작가들에 비해 인기가 많지 않은 이유도 그런 일본의 전설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독자들의 낯가림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한번 작가의 이야기에 익숙해지면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재미있는 작가중에 한 명이다.

  내 기억에서 일본의 너구리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애니메이션이 '폼포포 너구리 대작전'이다. 그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인들이 너구리에 대해 가지는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유정천 가족]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유정천 가족]에서 익숙해 졌던 '텐구'라는 전설적 요괴(?)에 대한 이해가 이번 소설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일본에서 유학한 지인의 '히구치와 하누키'에 대한 전설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이 소설을 읽기 위한 전제조건은 일본의 전설, 특히 너구리와 텐구 등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전지식이 없다면 히구치가 부리는 요술(?) 따위에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에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일본의 문화에 좀 더 깊이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기본 이야기 구조는 천진난만한 여대생을 짝사랑하는 자의식 과잉 대학생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봄의 밤거리, 여름의 헌책 시장, 가을의 대학 축제와 겨울의 독감유행의 4가지 사건을 통해 조금씩 사랑에 다가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청춘의 열병,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된 사랑이 남학생의 고군분투를 통해 서서히 여학생의 의식에 들어가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이 이루어지는 단계를 보여준다. 4개의 에피소드에서 남학생의 고군분투는 한편의 꽁트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그 사이 사이에 등장하는 이백, 텐구, 헌책방의 신 등의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이 현실과 전설을 뛰어넘으며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지금 짝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용맹정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세상과 처음 마주친 청춘들에게는 이백의 말처럼 '밤은 짧아, 걸어!'라며 청춘을 즐기라고 충고한다.

  비록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실연이라는 나락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순간이 있지 않겠는가.
  지금 여기서 뛰어들지 않으면 미래영겁을 어두컴컴함 청춘의 한구석에서
  뱅글뱅글 배회하며 보내게 되지 않겠는가. 제군이 바라는 게 그건가.
  - P. 340

  사랑에 대한 이야기 만이 아니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충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