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부모의 가슴속에는 늘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 많은 비밀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말만은 꼭 해야지 하는 것이 있다. 아직 하지 못한 말, 꼭 하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는 그 말을 모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와 자녀가 가슴속에 꼭꼭 품고 있던 말을 이 책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는 대신해주고 있다.

부모와 자녀에 관련한 시를 모은 책이다. 거기에 예쁘게 들어간 그림이 함께하고, 시인 도종환의 글이 덧붙여져 있다. 가슴을 울리는 시, 거기에 덧붙인 시인 도종환의 글이 엄마의 손길처럼, 아빠의 품처럼 따뜻하게 위로한다.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내 아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울었고, 부모님에게 너무 고마워서 소리내며 엉엉 울었다. 정년퇴임하시고 지루해하시는 아빠를 위해 컴퓨터를 사드리고 부모님을 위한 컴퓨터  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지금 그분들을 위해 해드릴 게 많지 않다. 내 자식을 건강하고 현명하게 키우는 것이 그분들에게 가장 큰 효도이리라 생각하며 이 삶에 집중한다.

다시 봄이 오고 / 이렇게 숲이 눈부신 것은 / 파릇파릇 새잎이 눈뜨기 때문이지 / 저렇게 언덕이 듬직한 것은 / 쑥쑥 새싹들이 키 커가기 때문이지 //...
다시 오월이 찾아오고 / 이렇게 세상이 사랑스러운 것은 / 올챙이 같은, 송사리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 송아지 같은, 강아지 같은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중에서, 오인태)

회사 일에 힘들다가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힘이 난다. 아니 힘을 내야 한다. 아이들이 커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봄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싹이 움트고 있고,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 선녀가 /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딸에게>, 김용화)

여기에 도종환 시인이 덧붙인다.
천상의 선녀처럼 어여쁜 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그토록 오래 쓸쓸한 사내로 살았던 것이고, 아버지가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였기 때문에 네 엄마가 선녀처럼 온 것이라고. 그리하여 네가 한 떨기 꽃처럼 이 세상에 피어나게 된 것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는 아름답다.
너도 풍요롭고 화려하고 권세가 넘치는 사내가 아니라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 그래서 너를 천상의 선녀처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을 만나 꽃 같은 딸을 낳으라고 말해주는 어머니는 아름답다.

참 아름다운 말이다. 쓸쓸한 두 영혼이 만나 사랑을 이루고 꽃 같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해준다. 그렇게 인류 대대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전해준다. 부모님에게 받은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내려온 사랑. 그 끈끈하면서 따뜻한 무엇. 인류를 지금까지 지켜온 순리이다.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중에서, 손택수)

여기에 도종환 시인이 덧붙인다.
아버지이지만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자국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의 흔적이면서 가난으로 인한 흉터이기도 한 지게자국. 아버지처럼 살에 낙인이 찍히는 삶을 너는 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면서도 감추고 살아온 자국을 본다. 자식의 가슴에 낙인처럼 깊게 박히는 두 줄의 지게자국.

자식의 가슴에는 이처럼 지게자국이 있다. 티비나 라디오에서 사람들은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울먹인다. 그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운다. 누구나 평생 가슴속에 안고 가야 할 지게자국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그 지게자국 때문에 제가 가슴이 아파요" 하고 말하지 못한다. 대신 왜 그렇게 사시냐고. "이젠 자식 걱정 하지 말고 편하게 사시라"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시고 있다. 자식 가슴에 지게자국이 선연한 것을.

나를 낳아준 사람만이 부모가 아니며 내가 낳은 아이만이 내 자식이 아니리라. 내가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너무 무겁게 짓누르지 않고, 부모 자녀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으면서 도종환 시인의 안목으로 고른 사랑과 삶에 대한 지혜들이 가득하다. 내 말투가 거칠어서, 너무 소중해서 하지 못한 말 내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기에 있는 시로 대신하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흘렸던 눈물은 부모님과 내 아이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세상에는 사랑할 것이 많다는 생각, 삶이 힘겹지만 용기내서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삶이 팍팍하게 여겨지고, 세상이 차갑고 어둡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삶과 사랑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보다가, 다시 내 부모님과 아이를 생각하며 도종환 시인의 엮은이의 말 중 한 부분을 적어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이는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사이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아 삶을 이어왔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 육신의 죽음을 맡깁니다.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사이입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아들딸로 자라게 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많은 벽이 가로막혀 있고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좋은 부모 되기 어려워 힘들 때 여기 이 시집에 있는 시 한 편 자식에게 건네주시면 어떨까요.
인생에 대해, 시련에 대해 말로 다 설명하기 버거울 때 여기 있는 시 한 편 자식들에게 읽어주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읽고 자식에게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