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거기,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그의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의 입주위에 안개처럼 떠돌고 있었다. 입술 끝에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더 멀어지기도 했다.

막상 그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이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46)

'파스칼 키냐르'란 이름을 알게된 건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무언가 강한 이끌림을 받았다.

키냐르는 2002년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상을 수상하였는데 그의 작가이력이 더 흥미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어릴적 자페를 앓았고, 그가 글을 써야 겠다고 결심한 것도 바로 그때문이라는것과 <떠도는 그림자들>을 집필할 당시 병마에도 불구하고 써내려간 책이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자신이 숨을 거둘때까지 계속 쓸 것이다" 라고 해서 나는 그에 대해 열광적으로 빠지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작가와 독자의 인연이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며, 나는 그런 흥분과 설레임으로 며칠동안 그의 책을 찾아 헤맸다.

내가 그의 책들중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제일 먼저 읽게된 것은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평범하고도 무성의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읽어주기기를 기다렸던 책 같았기 때문이다.(호들갑스럽게 왠 야단이냐며 의아해 해도 할수 없지만)

짧은 분량의 책임에도 나는 아주 아주 곱씹어서 읽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몇장을 밑줄을 그어가면 읽다가 더이상 밑줄을 치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책 전체가 밑줄을 쳐야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나는 어째서 그동안 그의 이름을 모른채 살아올수 있었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마져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로맹가리처럼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더이상 그의 책을 볼수 없는 것이 아닌 앞으로도 그가 살아 있는한 계속해서 그의 <마지막 왕국>시리즈를 볼수 있다는데 희망을 걸었다.

이 책은 신비스런 동화의 비밀 속에서 어떤 문을 여는 열쇠를 찾아낸 것같은 그런 느낌을 가져다 준다.

개인적으로 책속의 동화내용도 좋았지만 <메두사에 관한 소론>에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프랑스 아카데미 공쿠르회장인 에드몽드 샤를루에 의하면 "키냐르의 책 한권을 읽는 것은 다른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마지막 끝부분에 옮긴이가 키냐르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책을 꼭 한권만이라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바로 이책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권하겠다고 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것은 이책 한권뿐만이 아니라 바로 내게 전작주의 작가중에 한명을 더 추가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내 번역된 책을 찾아보니 <은밀한 생>, <로마의 테라스>, <떠도는 그림자들>, <옛날에 대하여>,<심연>, <섹스와 공포> 등이 있어 찾아보니 <로마의 테라스>가 절판되어 출판사에 구할수 없는냐고 문의를 했더니 바로 그날 다시 출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모두 구매를 해두었다. 이제 그의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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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밭에 드문드문 드리워진 응달들이다. 나는 언어를 성급하게 침묵의 형태로 맞바꾼 침묵의 파수꾼이었다.(70)

나는 욕망때문에,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혹은 직업삼아 글을 쓰는게 아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 동화는 나의 비밀이다.(71)

시(詩)란 오르가슴의 향유이다. 시는 찾아낸 이름이다. 언어와 한몸을 이루면 시가 된다.

시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정반대이다.(84)

글쓰기란 잃어버린 것의 시간을 취하기, 귀환할 시간을 갖기, 잃어버린 것의 귀환에 협력하기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목소리 듣기이다.(109)

글을 쓰는 바로 그 순간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에 대한 일체의 반성적 사로잡힘에서 나자신이 이탈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111)

글쓰기는 산란하기다. 물거품이다. 아프로디테이다. 수수께끼인 빈칸이다.

자진해서 길을 잃는 독자보다 더욱 길을 잃어버린 빈칸이다. 산란과도 같은 빈칸이다. 쾌락에서 흘러나오는 정액방울 같은 빈칸이다.(112)

한 작가에게 기대하는 바는 기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조차 알지 못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부재하는 단어에 몰두하여무엇을 되찾으려 한다.(117)

펼쳐진 책은 마치 이제 막 떠오르려고 가물거리는 단어를 향해 벌린 입과도 같다(118)

나는 글을 쓰는 행위에 의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 침묵의 단어가 없는 탓에 나는 단 하루도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떤 날도 내게는 휴일이 되지 못한다. 틀림없이 불안으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아마도 애초에 익사하지 않으려고 매달린 나무토막이었을 것이다.(122)

나란 위인은 자신의 욕구도 다스리지 못하고, 새벽시간마저 뜻대로 쓰지 못한다. 나는 지금 거울을 박살내고 싶다. 지금 동이 트면 좋으련만 그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매번 기회가 올때마다 어떤 기회든 내게는 여가처럼 생각되고,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뿐이다.(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