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서를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이다.

그 때 한비야님의 책을 읽고 나도 세계를 여행해 보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었다.  그리고 작가가 너무도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 후, 난 여행에 대한 꿈만 꾸었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보지 못하고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은 너무도 특별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단순한 여행서가 아닌 방대한 지식의 보고였고, 나 자신을 채찍질 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화가가 글을 썼다는 것이 내게는 과식처럼 생각되었었다.  그림처럼 화려한 기법의 문체로 가득한 그런 여행서가 아닐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의 첫머리에 있는 추천의 말을 읽으며 내 선입견에 대한 크나큰 질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이 여행서가 궁금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한 장 한 장 읽으며 내가 너무도 무지하다는 사실에 부끄럼기만 했고, 작아지는 내 자신을 느끼며 독서에 대한, 앎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화가의 너무도 방대한 독서력을 알 수 있었고,  그 독서력이 바탕이 되어 나오는 담백한 문체는 이 책에서 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라틴...아마 정열을 떠오르는 이가 가장 많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라틴은 단순 정열이 아니었다.  치열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작가는 단순한 화첩기행이 아닌, 문학과 사상, 예술을 넘나들고 있었다.  역사와 전통, 문화를 이 한 권에 고루 서술해 놓았다.

아마, 작가가 여행지에 대한 느낌만 적어 놓았다면 아마 난 이렇게 까지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쉬어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그리고 있지 않았다.  작가는 화가의 눈으로 사람들의 눈을 통해 삶의 모습을 그려 놓고 있었다.

제 1장 쿠바....쿠바는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나라인 것 같다.   미국의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경제 생활속에서 나름의 삶의 방법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작가가 보고 그린 그들의 모습은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이 아닌 그것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때,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쿠바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집 뒤뜰에 땅을 일궈 자급자족하는 모습이 어찌보면 안타깝고, 또 한편으로는 유기농법의 한 부분으로 비춰지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모습에서도 그들은 찌든 삶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그 삶에 순응하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지리적, 기후적 민족 특성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 모습은 그대로 이 책 속에 묻어났다.

오히려 작가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흔적이 있는 쿠바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물에 대한 설명을 더 많이 할애하고 있었다.  이는 작가의 방대한 지식을 다시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사람의 화가가 있었다.  바로 화가 천경자이다.

사실, 미술에 문외한인 난 아이를 키우며 미술관이란 곳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고, 그 또한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곳에서 천경자 화가의 작품을 만났다.  천경자 화가 또한 전 세계를 누비며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들이 한 미술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경자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그 미술관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외국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갔다가 덤으로 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이 갔던 딸 아이는 외국 작가의 작품보다 유난히 천경자 화가의 작품에 눈을 떼지 못했다.  왜 일까?

어쩜 같은 민족에게서 느끼는 그런 공감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림 기법은 동양화, 한국화가 아니어도 그 그림을 보며 풍겨져 나오는 느낌, 이끌림, 그런 것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실려있는 김병종 화가의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병종이란 화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가 유명한 화가요 벌써 몇 권의 책을 낸 작가란 사실 또한 몰랐다. 

그렇게 그림에 문외한인 난 작가의 작품을 보며 화가 천경자를 떠올렸다.  두 화가의 어떤 공통점이 내게 두 작가를 함께 떠오르게 한 것일까?  단순 ’여행’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을까?  아직 나 또한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여간 제 1장을 읽는 내내 두 작가에 대한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제 2장 멕시코 편에서도 역시 그의 화가로서의 안목이 돋보인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란 인물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정말 무지한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제 3장 아르헨티나...그나마 내가 조금 끼어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 곳이다.  에비타와 피아졸라....물론 두 인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  단지 두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반가움.  그리고 간략한 두 인물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조금은 숙였던 고개를 들 수 있었던 장이었다. 

제 4장 브라질...이 장에서 난 이구아수 폭포의 웅장함에 사로잡혔다.

제 5장 칠레...역시 나의 무지를 돌아보게 만든 장이었다.

제 6장 페루...아는 것과 직접 보고 느낌을 전달하는 작가와 커다란 공감을 느낀 장이었다.

각 장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로 ’인간’이었다.

작가는 인간, 인간 삶,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오, 이주민, 노예들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였고, 공통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는 꼭 라틴 아메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작가는 화가로서 그리고 붓을 들고 글을 쓰는 작가로서 바로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여행과 그림, 글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작가의 글과 그림에 푹 빠진 나, 그 여운이 짙게 깔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