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산허리에 우리집을 짓고 있네_ '안드로메다 하이츠'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좋다!' 이따금씩 '치킨'으로 실수를 해 제목을 떠올릴때마다 일부러 되짚어보기까지 하는 '키친'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알게 한 첫번째 작품이였다. 국제적인 감각을 지향하고자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필명을 생각해 냈다는 '바나나'. '아르헨티나 할머니' 'N.P' '도마뱀' '하치의 마지막 연인' '몸은 모든것을 알고있다' '암리타' '슬픈예감' '티티새'등 상실에서 오는 상처와 그 상처를 이겨내는 치유의 과정을 통해 상처입은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 그녀를 '왕국'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린시절 시즈쿠이시는 약초차를 만드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할머니를 도와 약초차를 만드는 법을 배운 시즈쿠이시는 산속에서 성장하지만 평화롭던 할머니와의 나날은 산이 개발되면서 변하게되고 그녀는 할머니와 떨어져 도시로 내려오게 된다. 눈이 안 보이는 점술가 가에데와의 만남, 선인장과 교류하는 원예사 신이치로와의 불륜, 가에데의 동성 애인이자 후원자인 가타오카 씨와의 대립을 통해 시즈쿠이시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좋아한다는 것은 알지만 몸은 반응하지 않으니까 어린애들처럼 지낼 수 있는거야." -P.99

바나나의 책은 적지않게 읽어왔지만 이번만큼 편안하게 책을 놓은적은 없었던것 같다.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은 결국 '행복해지고싶다'라는 근본적 자생능력에 의한 것이다. 매번 그 과정속에 녹아있는 치열함을 먼저 느끼던 독자다. 하여 '아무렇지 않다' '아무일도 아니다'라는듯 의연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문체를 대하면서도 매번 한꺼번에 몰아세우던 숨을 참아내지 못했다.

책 한권 몇백페이지를 읽으면서 원하는건 단 한가지일지 모른다. 내 맘에 들어오는 좋은 구절 하나, 내 맘을 보여주는 좋은 표현 하나. 그것으로 책은 내게 의미를 갖고 기억으로 남는다. 책을 받아들던 순간부터 마지막장을 읽던 순간까지 해까운 책이 곧 끝나버릴것만 같은 조급함과 두려움이 들었다. 속도를 줄여 차근히 읽자던 시간도 흐르고 결국 이렇게 책을 놓게 되었지만 난 한동안 잊었던 메모장을 꺼냈다. 그리고 책상 달력위에 임시로 표시해 놓은 페이지와 구절을 다시 써내려가며 또다시 생각이 바빠진다.

'2권! 빨리 2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