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분홍빛으로만 보이던 스무살 때였다.
작은 비눗방울같은 소소한 행복이 내 주변을 에워싸고 하늘로 올라가 뭉개구름이 되던 시절. 
그 때 나는 일본 소설에 심취해 있었는데, 수업 시간때 조차 몰래 전공 서적 안에
소설 책을 끼워놓고 하루종일 읽을만큼 일본 소설 특유의 ’우울’과 ’공허함’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 첫 단추가 <상실의 시대>였다. 
열 일곱살에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어리고 지친 영혼들의 성장통을 그린 소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차곡차곡 쌓였고,
새벽녘,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혼란에 가득찬 주인공 ’와타나베’가 되어 있었다.
일주일 정도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가 행방불명되어 버린 것 같은 혼곤한 아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 
그 고통을 견디고 받아들인 사람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통과 함께 시간 속으로 휩쓸리고 만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성장했고,
기즈키와 나오코는 추억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상처받고 작은 것에 흔들리지만 그 전과는 다른 것이 있다.
주인공이 그토록 고민했던 것들.
이를테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일 나를 떠나버린다고 해도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며
삶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안녕, 나의 상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