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주제로는 플라톤의 [향연], 에히리프롬의 [사랑의 기술], 그리고 문학거장들의 사랑의 편지등 쉽게 생각나고 읽을만한 책이 많았는데, 이별이란 주제로 삶을 고찰할 책은 쉽게 생각나기 않았다.  다양한 이별을 묘사해야 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라는 물음에 가장 먼저 생각 난 단어가 공항이었고 공항의 다양한 면모를 세밀한 관찰력으로 분석한 작품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2009년 여름, 히드로 공항관계자의 초청을 받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첫 "상주작가"가 된 알랭 드 보통이 일주일동안 공안을 탐색하며 쓴 명상집 (or 에세이) 이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와 함께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수하물 담당자로부터 비행기조정사에 이르기까지의 공항 관계자를 만나며 " 장소와 장소" "장소와 사람"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가 이 제안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 밖에 없을 것이다.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포착한 곳이기에, 이 책은 이별 이외에도 삶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마치 사진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분석한다. 가령 콩고드룸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보게 만들어준다.

이 세상의 노고와 소란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부, 권력, 탁월한 위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 [ 도덕감정론 ]에서 그렇게 묻고 스스로 대답을 했다.  " 공감하고 만족하며 찬동하면서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이다" 콩고드 룸을 만든 사람들은 이런 야망에 감동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대응했다.

 

(중략)

 

 우리 사회가 풍족한 것은 대체로 가장 부유한 시민들이 부자들은 이렇 것이다 하는 대중의 통념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약탈만해서는 절대 이런 종류의 라운지(세계화되고 다양하고 엄격하고 테크놀로지에 익숙한)를 지을 수 없다. 기껏해야 금을 바른 쾌락의 궁전이나 몇 동 지어놓고 다른 곳의 봉건적이고 후진적인 풍경은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콩고드 룸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정화된 공기 속에는 뭔가 모르게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맴돌고 있었다.  항공사의 전통적인 세 가지 클래스는 사람들의 진정한 재능과 장점을 기준으로 한 사회의 삼분법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암묵적인 암시다. 과거의 카스트 제도를 철폐하고 교육과 기회에 누구나 다가갈 수 있게 하려고 싸웠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만이 아니라 부의 분배에도 진정한 정의의 요소를 도입한 능력주의 사회를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근대에는 빈곤이 가련한 것일 뿐 아니라 응당한 것이기도 하다.  

 떠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한다. 사람들로 분비는 라운지를 목적없이 서성이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출발시각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VVIP라운지에서 그들만의 서비스를 즐기며 떠나는 그 순간까지 시간을 아낌없이 소비하는 사람.  알랭드 보통이 그들에 대해 나눈 삼분법이 묘하게 거슬리는데도 불구하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불행히고 VVIP 라운지에 들어가지 못하는 계층인 나는 행여 비행기가 연착되면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아 쓸쓸한 대합실을 서성인 적이 있다.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면서도 잠시 더 머무를 수 있다는 행복, 그리고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종종 가진다.  이런 묘한 감정이 머무르는 대합실의 분위기를 여행후기에 꼭 쓰고 싶었는데 알랭 드 보통은 얄밉게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저녁시간 대합실의 분위기는 쓸쓸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느낌은 자비롭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 외로운 경우에 겪을 수도 있는 불편이 없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혼잡한 도시의 술집이 분명히 더 쾌할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보였기 때문이다. 밤이면 공항은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본거지가 된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네임밸류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택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그리고 숨어있던 공항 속 삶에 대한 사색이 알차게 들어있는 책이기에 만족스러웠다. 이별에 대한 감정은 그리 많지 않아 처음 책을 읽은 목적과는 동떨어지긴 했지만, 결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