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통해 절제된 표현 속의 무수한 의미를 감당한 적이 있었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다시금 그러한 표현이 주는 끝없는 여백의 숲을 헤매고 다녔다. 즐겁게 헤매고 다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단 10 분도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의 삶에 바짝 다가 앉았던 기분을 느꼈다. 그의 잠자리의 식은 땀속에, 그의 입맛 없었던 밥상 머리에 몇날 며칠을 함께 한 듯한 느낌. 

 

단 한 권을 책을 읽고 그의 인간적 고뇌를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리하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삶의 허무함과 무내용함에 밤새 깨어 앉아있던 심정을 조금 들여다보기는 한 것 같다. 그것은 왜적과의 전쟁이기도 하였으나 무내용함과의 전쟁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의 시대에 비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나 "애국" 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지금의 애국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가벼운 것인가? 너도 나도 쉽게 말하는 그 애국이 이순신에게는 너무도 복잡하면서도 상처가 많은 것이었다. 그 애국에는 선조 임금의 정신병질적인 울음, 보챔, 양반 권력층의 명분 없는 폭력성, 그리고 자신의 무력감을 싸안아야 하는 갈등과 침잠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쟁 속에서의 일상. 전쟁을 하면서 된장을 담고, 전쟁을 하면서 생선을 잡아 소금에 절이고, 씨레기를 말린다. 이순신 장군이 아녀자들이 신경써야 하는 이러한 일에 대해 명령을 내리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되었으나 나라에서 책임지지 않는 병사들의 먹거리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백의종군 이후 이순신은 항상 자신의 죽을 자리를 생각한다. 어디서 남은 생을 잘 살 것인가를 탐색하는 사람처럼 모든 정황과 장소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 나간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죽음으로 자신의 전쟁을 끝냈다.

 

갈 길을 알고 있었기에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일까? 그의 죽음은 삶 만큼이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칼의노래, 이순신,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