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가 최근 광고분야에서 창의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웅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를 직접 관찰하거나 대화를 하거나  또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탐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웅현이 공동 작업한 광고 카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심이 짓는다" 등 다수라 한다. 모두 강한 인상으로 그리고 익숙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카피들이다.

 

책의 문장 하나 하나를 볼 때는 관점의 독특함, 표현의 참신함, 그리고 깊이가 느껴지는데 글 전체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는 못한 제한점이 있었다. 광고학에서의 창의성의 의미는 일반적 창의성과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인문학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지 인문학 독서를 창의성과 연계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책의 구성이 전체적으로 좀 더 다듬어졌더라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박웅현이 손으로 써서 책상 위에 붙여 놓았다는 김사인의 "조용한 일"이라는 시였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그냥 말없이 있다.

고맙다.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박웅현이 왜 이 시를 손으로 써서 책상 위에 붙여 놓았는지에 공감이 되었다.  어느 책에선가 책은 감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시가 박웅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서로 동일한 것에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이다. '조용한 일' 이라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존재 (presence)"의 고마움이다.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그 시간, 그 자리에 마음을 다해 함께 있어 주는 존재감에 대한 고마움.

 

한편,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는 '존재감'과 조금 다른 '스쳐 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평소 박완서 작가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거나 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자신이 그 책에서 공감한 내용을 남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은 허영심 같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어느날 오래 전에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사해부근에서"라는 책에서 자신이 직접 밑줄을 그은 부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밑줄은 빌라도와 예수가 나눈 아래의 대화 중 '스쳐 간다'라는 말에 그어져 있었다.

 

예수: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쳐 간다고 말했습니다."

빌라도: "그렇다면 내 인생도 스쳐 갈 셈인가?"

예수: "그렇습니다."

빌라도: "그리고 내 인생에도 그대의 흔적을 남길 셈인가?" "그러나 나는 그대를 잊을 걸세"

예수: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한번 그 인생을 스쳐 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빌라도: "왜지?"

예수: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스쳐 감으로 흔적을 남기고 변화를 주는 것은 무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가진 예수님급 또는 부처님급의 존재에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함께 있어 주는 것이든 강력한 에너지로 스쳐 가는 것이든 존재함으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절망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것은 함께 있어 준 존재감도 아니고 강렬한 종교적 스쳐 감도 아니며 단지 '시간의 스쳐 감'이었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이 치유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박웅현, 인문학으로광고하다, 김사인, 조용한일, 박완서, 스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