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밴을 이 소설 <고트 마운틴>으로 처음 만났다. 그의 전작 <자살의 전설>이 그레이스 팔리상을 비롯해 크고 작은 10여개의 상을 수상작가라 궁금하던 찰나에 만난 작품이다.

  솔직히 고백컨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감이 오질 않았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이지...현실같지 않은 전개라 이어져서 한 장만 넘기면 꿈에서 깨어났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글의 분위기조차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구름을 보는 듯 몽환적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꽁꽁 싸매져 오로지 이들 가족에게만 허락된 공간 고트마운틴, 그들의 공간을 침범한 밀렵꾼과 맞딱뜨리고 당겨진 방아쇠, 총소리가 울리고 밀렵꾼은 열한살 소년에게 목숨을 잃는다. 사냥의 열기만 가지고 있던 소년에게 밀렵꾼의 죽음은 다가오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의 행동이 자신을 옥죄이고 있다는 것만을 느낄 뿐, 단숨에 죽어버린 밀렵꾼보다는 다음날 사냥에서 만나게되는 사슴을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보다 뚜렷이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총알에 맞아 부상을 당한 뒤 달아나고자 기를 쓰는 사슴을 보며, 그리고 그 목숨을 소년 자신이 끊어야한다 주장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죽음의 의식을 행하고 어른의 길로 들어선다.

  글은 대부분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짧게 내뱉어진 말들이 상황의 긴박함을 고조시키면서 오히려 현실이 아닌 양 은율처럼 노래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상반된 두 개의 느낌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놀라운 점이다. 이것이 이 작가의 필력인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진배없는 목소리. 사슴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통과 당혹감과 분노의 목소리가 하늘로 올라갔다. 날카로운 비명.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겁에 질린인간의 비명처럼 들렸다. 사슴은 앞다리로 땅을 파며 사슴이 다시 비명을 지렀다.  내 쪽으로 기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가슴은 세우고, 일어날 듯 일어날 듯 했지만 하반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납으로 만든 하반신, 오직 지구로 끌어당길 뿐인 무게. 사슴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슴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으리라. 돌아서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올 뿐이었다.

 

 

  <고트마운틴>의 전개는 단순히 밀렵꾼과 사슴을 죽인 열한살 소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본능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다. 데이비드 밴은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 말하는 종교를 끄집어낸다.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인 카인의 살인을 부쳐 소년의 동물적 본능을 이야기한다. 신으로부터 재물을 거부받은 카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지 , 순간 욱하는 감정으로 아벨의 머리를 내리친 그 순간 그가 가진 감정이 어떠했을지... 후회했을지도 ... 하지만 이미 선을 넘은 한 걸음 때문에 그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아벨의 머리를 내려칠 수 밖에 없었을거라고 소년이 사슴의 발버둥을 보는 것이 힘들어 돌아서고 싶었음에도 그럴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까닭으로 애를 쓰면 쓸수록 자신에게 다가올 뿐이란 말이 머리에 맴돈다.

 

  밀렵꾼의 죽음으로 모든 것의 질서와 규범이 사라져버린 고트마운틴에서 새로운 질서와 규칙이 만들어진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그는 마치 신이 된 듯 그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깨진 규칙들을 압박한다. 뜻이 통하지 않아 갈등이 빚어지지만 동물의 세계처럼 한판승으로 눌러버린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마지막을 맞닿뜨린다. 읽는 이(적어도 나는)는 이 사건의 종말을 다르게 여기고 있다가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으로 멍하니 마지막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읽는 내내 끝이 다가올수록 이야기의 마지막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궁금해졌다. 그 어떤 복선도 보이지 않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짐작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작가는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짐작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결말을 암시했던 것이다. 카인의 살인에 대한 비평을 통해, 살인이라는 단어를 피하고는 있지만 그 순간 때문에 겪게되는 4명의 이야기는 짙은 여운은 남긴채 끝이 났다.

 

  난해하면서도 심오하다는 역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은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음에도 무겁고 힘겨웠다.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짙게 깔려있어 그럴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으며 간만에 제대로된 글을 읽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언어가 주는 감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거라 생각했다. 내용 속에 가슴 뭉클한 감동은 없다. 그러나 글의 대단함이 주는 격함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느낌이 강렬해서 작가의 팬이 되기를 주저할 수가 없다. 그가 앞으로 내게 될 후속 작품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