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전체(578)

여자 아이의 여원 어깨 위로 길게 땋아 늘어트린 윤기있는 머리카락 한 다발을 잡아당겨 매슈의 눈앞에 갖다 댔다.

“빨간색이구나, 그렇지?”

“네, 빨간색이죠. 아저씨는 이제 제가 완전히 행복 할 수 없는 이유를 아실 거예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전히 행복 할 수 없어요. 저는 주근깨나 초록색 눈이나 말라깽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런 것들은 없다고 상상할 수 있거든요. 화사한 장미꽃 같은 살결과 아름답게 빛나는 보라색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빨간 머리가 없는 건 상상이 안되네요. 저는 최선을 다하지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이제 내 머리카락은 갈까마귀 날개처럼 우아한 까만색이야.’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제 머리카락이 새빨갛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 가슴이 찢어지죠. 평생 동안 짊어질 슬픔일 거예요. 전에 평생 가슴에 맺힌 슬픔을 안고 사는 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슬픔은 빨간 머리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 아이는 설화 석고 같은 이마에서부터 등 뒤로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금발을 가졌어요. 그런데 설화 석고 같은 이마가 뭘까요? 저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아세요?”

매슈는 약간 현기증을 느끼면서 말했다.

“으음, 잘 모르겠구나.”

매슈는 철없던 젊은 시절에 소풍을 갔다가 웬 남자 아이가 회전목마를 타라고 꼬였을 때 느꼈던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 아이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녔으니까 좋은 뜻일 거예요. 아저씨는 무엇이 성스러운 아름다움인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매슈는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으음, 아니, 그런 적 없어.”

“전 있어요, 그것도 자주요. 아저씨는 성스럽게 아름다운 것과,
정신이 아찔하게 똑똑한 것과, 천사처럼 착한것 중에서 고르라면
어떤 걸 고르시겠어요?”

“글쎄, 잘 모르겠어.”

“저도 그래요. 절대로 결정하지 못할 거예요. 그 중에서 제가 될 만한 건, 저는 결코 천사처럼 착해지진 않을 거라는 점이에요.”

 

                                       -루시 M.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ㅡ 1874~1942, 캐나다 소설가. 본명 Lucy Maud Montgomery 달하우지대학교 학사. 프랑스 예술원 은메달. 영국 학사원 회원, 캐나다 프레스 클럽 회원, 예술원 회원. 1901년 데일리 에코지 기자. 빨간머리 앤으로 친숙한 작가 루시 M.몽고메리의 작품들을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