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은 1927년 상하이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1차 국공합작이 국민당의 장개석의 구데타에 의해 결렬되는 과정을 그린 르포르타주, 즉 기록문학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 알게되었다^^;) 기록문학은 사실적이고 단편적인 보도문이 아니라 보도자의 식견을 바탕으로 사건이나 현상을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공산당의 당원으로 상하이 혁명이 참여하였다가 장개석의 구데타로 무참히 숙청당한 테러리스트와 코뮤니스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했다. 대부분의 세계 명작이 그렇듯 인간의 조건 역시 흡인력있는 서사의 전개와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였다. 말로는 여러명의 인물이 상하이 혁명이라는 동일한 시대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광풍속을 헤쳐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p.265~266
"빨갱이건 파랭이건," 하고 페랄은 말했다.
"쿨리는 어디까지나 쿨립니다. 죽지 않는 한 말이지요. 인간이 단 하나밖에 안 가진 목숨을 어떤 사상을 위해서 버린다는 것은 인류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인간이, 글쎄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견디어 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겠지요······"
지조르는 기요의 사상을 생각했다. 인간이 이해를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의 증명을 막연하게나마 지향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의 노예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시민에게는 국가가,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인간이 존재하는 조건의 바탕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한다. 생김새, 직업, 소득, 복장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존엄이 아닐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인간의 조건의 바탕을 다양한 방식으로 회피하고 벗어나며 살아간다.

p.265~266
"아무튼 인간이라는 것은 줄곧 중독에 걸려 있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이 나라에는 아편이 있습니다. 마호메트 교도의 나라에는 마약이 있고, 서양에는 여자가 있습니다 ······ 서양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마도 연애가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인지도 모르겠군요 ······"
그의 이런 말의 밑바탕에서 몇몇 인간상이 은밀하고 막연한 흐름이 되어 역류해왔다. 첸과 살인, 클라피크와 광기, 카토프와 혁명, 메이와 연애, 그 자신과 아편 ······ 그가 보는 바로는 다만 기요만이 이런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코뮤니스트 기요가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받아들이고 혁명에 참여하는 까닭은 오로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기요에게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간조건의 바탕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평등, 복지, 존재, 존엄, 인권······스무살 이후로 더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단어들이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써 한 번쯤은 해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