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삶이 곧 책이다.

누군가의 서재를 엿보는 즐거움은 새햐얀 눈을 처음 밟는 것만큼이나 은밀하면서 동시에 설렘을 동반한다. 더욱이 그 서재가 좋아하는 이의 서재라면 그런 마음은 배가 될 것이다. <과학자의 서재>를 접하기 이전에 네이버에서 한 달에 한번씩 소개되는 지식인의 서재에서 최재천 교수의 서재를 미리 맛 보았다. 아홉번째 에피소드에 소개된 최재천 교수는 서재는 그의 서재가 숲이라 했다. 그의 서재는 생물학자의 서재일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책이 많이 있으며 여러분야의 사람들이 많이 둘러본다고 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서재를 보면서 생물학자로서 영감을 주었던 솔제니친의 <우리는 죽지 않을테니>(분도출판사, 1985)의 수필집 중 '모닥불과 개미'의 이야기를 듣고 당장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도 했다.

<과학자의 서재>는 지식인의 서재에 소개된 이야기에 살을 덫붙여 생물학자로서의 삶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길을 밟아왔으며, 그동안 어떤 책을 읽으며 살아왔는지를 생생하게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입시에 따라 학원을 오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력과 호기심,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 또한 '행복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최재천 교수는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과학자의 꿈을 꾼 것이 아니라 그는 어렸을 때에는 시인을 꿈꾸기도 했고, 예술을 하는 조각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 그가 대학에 와서 '동물학과'의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그의 다양한 독서력은 시기에 따라 그를 인도하듯이 방향을 잡아준다. 최재천 교수의 이름 앞에 '통섭' 이라는 두 글자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었다. 꾸준하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점점 더 깊고, 넓게 자리잡은 그의 세계는 오늘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자연 과학자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해야 할 일을 미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리한다'는 생활습관을 지키며 오늘날까지 왔다. 내가 혹 성공적으로 살았다면, 그리고 거기에 비결이라 할 만한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미리한다'는 것. - p.236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행운도 역시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6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행운은 무작위로 방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준비가 된 곳에만 방문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목표일지라도 조용조용 준비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운의 여신이 악수를 청하게 되어 있다. 단지 그 여신이 비행기를 타고 올 수도 있고 KTX를 타고 올 수도 있고 정류장마다 서야 하는 완행버스를 타오 올 수도 있기에 시차가 날 뿐이다. - p.257

책을 읽으면서 가장 뜨끔하면서도 와닿은 부분이 이 두문장이었다. 그의 성공비결과 신념이 담긴 이야기는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주춧돌이 되는 이야기를 최재천 교수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보며 앞으로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가슴 깊은 조언을 한다. 먼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선배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어른으로서의 이야기.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첫번째인 그는 지식의 탐을 넘어선 자연과학의 재미와 분야를 넘어선 그의 주옥같은 이야기가 단비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통해 티비에서 보았던 <동물의 세계>보다 글을 통해 느꼈던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의 서재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을 멀게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 났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 자연책에 실험을 한다고 갖다놓은 식초를 책이 흠뻑 젖도록 쏟아놓은 남자아이 덕분에. 한 학기 내내 과학책을 꺼낼 때마다 맡아지던 식초의 시큼한 향내....덕분에 그 시간을 기점으로 나는 과학과 친해지지 못했다. 그때 같으면 과학자의 서재는 나에게 가장 멀고도 먼 사이였지만 최재천 교수의 글을 통해 과학자의 서재는 가깝고도 친근한 분야가 되었다.

분야를 넘나드는 글과 책을 통해 친숙하게 된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 과학자의 꿈을 꾸는 이들에게, 과학이라는 분야를 멀게만 접했던 이들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