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예술적 향취를 느끼다.

 

 어떤 분야에 관심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 분야의 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을 찾듯이 탱고 역시 많은 이들이 그랬듯 나 또한 영화 <여인의 향기>를 통해 탱고의 강렬하면서 농밀한 춤사위를 보았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였기에 그 영화에 대한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그 장면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가끔 케이블을 통해 댄스 스포츠 대회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선수들의 몸짓을 볼 때마다 남녀의 몸짓이 우아하고, 강하게 느껴져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M본부에서 하는 '댄싱 위더 스타'를 통해 탱고 이외에도 왈츠, 룸바, 차차차등과 같은 두 남녀의 몸이 얼마나 유려하게 맞닿아 하나의 스텝을 밟는 동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출연하는 스타들을 통해 매주 금요일마다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댄싱 위더 스타 2'를 해서 이전과 같은 재미로 그들의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춤은 '파소도블레'와 '탱고'다. 너무나 강렬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춤.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부제로 쓰인 것처럼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이다.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1870년 즈음에 태동했으며 1900년 전후에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역사가 깊은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니 놀라웠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하면 축구가 절로 축구가 떠올랐지만 내가 모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축구 이외에도 탱고가 태생된 곳이었고, 문학적으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세계적인 소설가를 배출해 낸 나라. 특히 그는 20세기 후반에 전 세계적으로 지식인과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라고 하니 설령 그의 작품은 못 읽었지라도 풍문으로 그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그가 탱고 곡을 작곡했다니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모르는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의 정신이다. 그들은 탱고 속에서 성장했고 탱고로 자신을 표현한다. 탱고는 이 도시에 있었던 시민들의 추억, 어린 시절, 사랑, 성공, 실패, 배신, 좌절, 그리고 타락과 관조 등 모든 것을 담고 있다. -p.27

 

다시 탱고로 돌아가보면, 탱고는 이민자들의 슬픔을 담은 그리움의 몸짓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쓴 <검은 꽃>(2010, 문학동네)을 보아도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자신의 조국을 떠나 더 큰 희망을 품지만 결국 그들의 꿈은 황혼 빛으로 져버리고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여 힘든 노동과 극심한 향수병에 젖곤했다. 타향살이의 고됨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기에 그들은 그 이중고의 아픔은 춤으로 표현했다.

 

탱고 한 곡은 보통 3분 내외이며 길어야 5분이다. 3분 후면 그들은 떨어지는 것이다. 곡이 바뀌면 상대도 바뀐다. 그러므로 주어진 단 3분에 자신의 소망과 열정을 다 보여 주어야 한다. 상대는 곧 가 버리기 때문에. 3분이든 30년이든 똑같다. 탱고나 인생이나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상대는 떠난다. 그러므로 이별을 전제로 한 춤에서 그들은 정열적일 수 밖에 없다. 끝을 알고 하는 사랑이니,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다. 탱고는 사랑을 나타낸 것이고, 또한 탱고는 인생이다. 그들의 춤은 3분, 그들의 사랑은 3분, 3분 동안 그들은 울부짖듯이 모든 열정을 다하여 춤을 춘다. - p.37

 

19세기에 후반에 아르헨티나의 정부정책으로 경제 개발이 한창일 때 많은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들어왔다. 그들은 저 멀리 배를 타고 항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했고 대부분 그들은 부두가 있는 라 보카 지역과 산 텔모, 몬세라트 지역에 거주 했다고 한다. 특히 라 보카 지역과 산 텔모 지역은 탱고의 본거지로서 19세기 후반에 몰려들었던 남성 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이자 그들이 사는 주변에 유곽이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짙은 그리움은 지울 수 없었고 유곽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안하고자 남자들이 추었던 춤이 바로 '탱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탱고는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다리로 추는 춤"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 탱고 추는 남녀를 유심히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나 여자는 거의 한 발이며 그녀의 몸은 내내 남자에게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붙이고 있을 때는 남자의 한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순간이다. - p.428

 

남자들의 슬픈 춤사위가 탱고의 시작이었다면 점차 탱고는 남자와 여자가 추는 춤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탱고를 보면 두 사람이 직선으로 서 있다는 느낌 보다 선이 겹쳐진 하나의 점으로 느껴진다. 농밀하면서도 애가타는 짙은 그리움을 주는 춤사위가 눈을 델 수 없게 만든다. 서로의 그리움이 하나로 뭉쳐져 서로를 보듬는 몸짓으로 느껴졌다.

 

탱고를 춤으로서, 음악으로서 탱고를 찾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누비며 저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설명과 곁들여진 사진은 그 어느 때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풍취와 향취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초판 한정으로 수록된 카를로스 가르델의 음반을 들어볼 수 없어 아쉬웠다. 무엇이든 초반의 미미했던 시작이 서서히 성장하고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쇠처럼 단단해지듯 마법처럼 빠져드는 탱고 역시 자연의 섭리처럼 그 길을 따라왔다.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 어떤 춤보다 더 매혹적이고 강렬했던 춤사위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위대한 춤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