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이라는 단어에 대한 불온함을 넘어서는 글.

 이서희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 '유혹'이라는 단어만 떠올려 봤다. 평소 드라마나 영화, 책을 통해 보는 '유혹'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쓰였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니 역시나 불온한 뜻을 갖고 있다.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끌거나, 잘못하여서 마음이 갈팡질팡한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보통 이 단어는 가정이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자신의 미모를 꾀어낼 때 많이 쓰이다 보니 그 유혹의 색깔은 마치 팜므파탈처럼 매혹적이면서 때로는 비상구 없는 끝없는 터널을 가는 것 마냥 어둠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요즘은 영화나 책, 드라마를 통해 남자사람과 여자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 시선이 많이 넓어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서스럼없이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지 않다. 아마도 철저히 감추는 보수적인 성향의 시각이 강한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 스스로에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을 뿐, 남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녀가 사랑하는데 있어서 누군가에게 이미 몸과 마음을 주고 메인 몸이라면 다른 누군가와 사랑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반대를 하고, 그 것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될 수 있으면 그런 이야기는 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점점 바뀐 것인지 몰라도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다루는 소재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사랑에 있어서는 어떤 장벽을 두지 않고, 편견을 두지 않고 바라보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당시의 열렬한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이 계속해서 나와 맺어지는 현실이 될 것인지 아니면 추억으로 남을지는 그 사랑을 유혹하고 있는 힘껏 빠져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이 후회든 마음의 상흔으로 남든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희 작가의 <유혹의 학교>를 읽으면서 내가 유혹이라는 단어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이 들어 그녀가 만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나는 그때 당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자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매혹적이다. 관능적인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고 남녀간의 이끌리는 감정이나 '유혹'이라는 단어의 불온함을 넘어서는 그 매혹적인 감정의 묘미를 유혹의 학교를 통해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유혹은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이기도 해. 부담스러우면 당연하게 거리를 두고 필요하다면 딱 부러진 거절도 할 수 있는 거야. - p.16

알고 있나요? 인간의 동공은 카메라 렌즈와도 같아서 빛이 부족하면 조리개를 열고 넘치면 닫지만, 시선을 끄는 대상이 있을 때에도 열리고 확장된다는 것을. 눈빛은 자꾸 길어지고, 그렇게 길을 내지요. 그 고요한 시선은 다시 자기가 낸 길로 돌아오고 말지요. 내게로 옮겨오는 당신의 눈빛이 길고 잦아질수록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 올랐습니다. - p.30

유혹은 서사를 품고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단, 그 이야기가 풍경처럼 흘러서는 안 된다. 유혹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유혹당하는 자를 연기하는 편이 좋다. 상대의 존재에 매료되어 열리고 움직이는 공동의 서사가 현재형으로 진행 중임을 느끼게 해주면 좋다. -p.37~38

유혹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그곳으로의 문을 여는 초대의 행위이다. 그러나 당신을 구원하거나 그 세계에 영원토록 머물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니다. 유혹에서 사랑을 선불처럼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유혹은 관계의 적정 지점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다. 삶의 좌표가 변하듯 관계의 좌표도 움직인다. 때로는 느리게,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도 말이다.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유혹은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게 해준다. -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