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세입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여러모로 핫하다. 원작이 있는 경우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는 버릇이 있다보니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배우의 연기가 좋아하는 평 만큼이나 내 눈길을 사로 잡은 건 아가씨의 포스터였다. 배우들의 사진이 점철된 모습의 포스터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을 한 장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동양화 같은 포스터에 혹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원작소설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2014.열린책들)도 읽고 싶었다. 동성애에 관한 충격이나 놀람, 격한 반응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녀의 이야기가 크게 놀랍지 않다.

<게스트>는 세라 워터스의 신작 소설로 제법 넓다란 판형에 740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을 가진 작품이다. 게스트라는 제목 보다는 '은밀한 세입자'라는 제목이 더 좋을 것 같다. 유럽의 어지러웠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2년의 영국 런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쟁을 끝났고, 참전했던 군인들은 다시 돌아왔다. 퇴역한 군인들은 생사가 오갔던 장면, 장면을 잊지 못하고 생채기를 안고 왔고 그것이 개인적인 환멸로 돌아와 각 가정에 큰 구멍을 낼 만큼 커다란 손실로 다가온다.

주인공 프랜시스는 전쟁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어머니와 저택에 함께 살고 있다. 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프랜시스의 집 또한 비껴나갈 수 없었고 저택의 남아있는 방들을 세 놓게 된다. 고풍스러운 저택에 세입자로 들어온 젊은 부부인 제너드와 릴리안이 들어오면서 프랜시스의 삶에 또다른 소용돌이에 휘둘리면서 그녀의 삶을 격변시켰다. 일상의 단조로웠던 프랜시스의 삶이 세입자로 부터 방해를 받고 프래시스와 릴리안의 우정이 어느덧 사랑으로 변모한다.

세라 워터스는 <핑거스미스>에 이어 <게스트>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인 동성애를 매혹적으로 그리고 있다. ㅇ럽의 격변기이자 모든 사람들의 삶에 가장 커다란 바람이 불어왔듯 나이많은 처녀인 프랜시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라 워터스의 매혹적인 이야기는 길고 긴 긴장감과 숨을 조여내듯 섬세하게 녹여대는 애틋함은 물론 생각지 못한 커다란 반전이 숨어 있는 책이다. 남녀간의 사랑이 일반적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사랑법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세라 워터스가 그린 레즈비언의 사랑 모습 마저도 숨을 죽이고 그들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세라 워터스의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하게 감정을 녹여대는 심리묘사다 보니 읽는 내내 끝없이 그녀의 표현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금기시 하고 있고, 그것을 자연스레 내어 놓지 못한 사랑이지만 프랜시스와 릴리안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이끌어내는 미스테리 소설의 뒤가 약하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처음 그녀의 소설을 접했기에 생각보다 훨씬 더 그녀가 만들어낸 표현에 이끌려 재밌게 작품을 읽었다. 연애소설과 범죄소설을 엮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연애소설로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