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주는 본질을 일깨워주는 책.

 그의 책은 늘 옳다. 5년만에 다시 돌아온 '책은 도끼다'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그의 책 중 <여덟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상기 시켰을 정도로 단단하게 얼어붙은 내 감수성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몇 년전에 <책은 도끼다>에 언급된 밀란 쿤데라의 대표적인 소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가지고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숨에 한글날에 그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좋아한다며 책 속에서 좋았던 문장들을 다시 타이핑해서 갖고 다닌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고, 책 속에 좋았던 문장들을 다시 담아내는 과정이 어렵지 않지만 그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걸 알기에 손에 쥔 그 목록이 센세이션하게 느껴졌다.

그 때만해도 책 속에서 읽었던 문장은 포스트 잇으로 붙여 높거나 리뷰를 쓸 때 인용하는 것 이외에는 다시 담아두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읽고 봤던 문장이 머릿 속에서 사르르 사라져갔다. 예전에는 읽었던 책에 한해서는 책의 제목, 저자, 책의 내용, 주인공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콕콕 찝어가며 댈 수 있었건만 지금은 간혹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헷갈릴 때가 많다. 읽었던 문장이 쉽게 휘발 될 줄 알았더라면 차곡차곡 잘 쌓아놨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만큼 그가 책을 읽고 꼭꼭 씹어가며 창의적인 독법으로 읽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좋았고, 소개해주는 책 또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다시, 책은 도끼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 곽재구 시인의 <길 귀신의 노래>였다. 그 외에는 이름만 무수히 들어봤을 뿐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책들이 많았고, 읽어보려고 책장에 고히 모셔논 책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의 소개하고 읽어나가는 독법은 그야말로 많은 위시리스트를 부르게 만든다. 이미 모 서점 장바구니에 쌓아논 책들이 많은데도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득 찬 바구니에 그득하게 담았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면면과 부족한 것들에 대해 채우고 싶은 욕망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이에게는 자기만의 독법으로 읽어도 여전히 저자가 쓴 깊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기에 강독이나 문학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갈구한다. 독서는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만의 오독을 통해 하나하나 읽을 수 있지만 그의 인문학적인 소양과 책에 대한 탐구, 깊이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깊이 있는 해석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특히나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 관한 책과 밀란 쿤데라의 <커튼>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이 가장 인상깊었다. 한 권의 책을 다 줄칠 수가 없어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분 좋은 청량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일반적인 여행서는 대상에 대한 객관을 담습니다. 기차표가 얼마이고, 맛집이 어디에 있고 하는 식의 객관적인 사실들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대상에 대한 저자의 사색'이 주제가 됩니다. 이 사람 외에는 건져 오릴 수 없는 것들이죠. 오늘 소개해드릴 기행문들을 읽을 때에는 그것을 발견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는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순간순간 예민하고 싶어 했죠, 그 순간에 온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나는 그런 영혼이요.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달린 덧없는 동물. - p.18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