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기록을 다시 되새기다.

 작년에 영화 '명량'이 엄청난 흥행을 해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다시 되새겨보는 한 해가 되었다. 이즈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많은 이들이 이순신 장군이 보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았다. 나 또한 그 인기에 힘입어 그가 걸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 그 시간의 조선을 바라 보았다. 작년에는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올해는 선조를 옆에서 보필했던 재상 류성룡이다. 현재 K본부에서 <징비록>을 방영하고 있어서 그런지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드라마를 시작하는 주에 드라마를 마치고 <징비록>에 관한 다큐를 하고 있어서 우연찮게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이야기를 패널들과 함께 그들이 토론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통 우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을 유성룡이라고 하기도 하고 류성룡이라고 하는데 안동 풍산 류씨 문중에서 두음법칙에 의해 '류'를 '유'로 표기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류'로 표기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서는 법의 원칙을 따라 유성룡이라고 했지만 류씨 문중 의사대로 '류'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다루면서 문중의 의사를 존중했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 선생은 <<시경詩經>>에 "지난 일의 잘못을 주의하여 뒷날에 어려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징비록>>을 쓴 이유다.(P.13)라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훗날 다음 세대가 자신이 겪은 참상을 다시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썼다던 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로 일본에 의해 많은 설움을 겪었다. 더불어 200년간 전쟁을 겪지 않아 주변의 나라의 동태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 안일함과 당시 관리들의 정신상태는 <징비록>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울분이 터져나왔다. 높은 직책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리를 하고 있는 성을 지키지 않아 적진에 그대로 넘어갔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 혼자 도망간 관리는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의 20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므로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사람들이 다 편한 일만 찾았다. 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성 쌓는 일을 피할까 하는 생각만 했고, 너도 나도 힘든 일을 시킨다고 불평만 했다. - P.29

조선의 임금 중 가장 싫어하는 임금 중 하나가 '선조'다. 어쩌면 가장 억울한 임금일 수 있겠지만 시기적으로 그는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지 못했고, 신하들의 쓰임새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 임금이기도 하다. 통신사를 다녀온 두 사람이 발단이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라에서 방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가장 크다.

"서울에는 마땅히 힘 있는 장수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일을 지방으로 보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임금께 말씀 드렸다.

"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구나 군사들을 다스려서 적을 막는 일은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일 갑자기 적이 쳐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이일을 내려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보내 마라 군대를 정비하고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급하게 장수를 내려보내면 그 지방 땅의 형세가 전쟁하기에 알맞는지, 군사들은 얼마나 용감한지 잘 알지 못할 터이니 싸우는 데 크게 불리할 것입니다. 이것은 병법에도 맞지 않습니다. 미리 장수를 내려보내 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 P.32

다행히 서애 류성룡 선생이 이순신 장군을 눈여겨 보았는지 그를 천거했고 임진왜란에서 다행스럽게도 일본에서 밀고들어오는 진격의 순간을 가까스로 누를 수 있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신의 한 수'라고 말하지만 서애 류성룡 선생은 다각도로 전쟁을 대비할 것을 선조에게 간청하지만 그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나서고야 만다. 물론 임진왜란이 선조라는 임금 하나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살고 있던 고위급 관리들의 안일함이 제일 컷을 것이다. 큰 전쟁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병장들과는 달리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 도망가는 꼴이라니.

어떤 전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없듯이 침략한 쪽도 침략을 당한 우리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었으며 훗날 일본도 그 세력을 다해 침략한 이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갔다는 설명에 마음이 스산해졌다. 글을 쓴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뼈아픈 순간이며,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는 순간이다. 종종 문화 유적지를 갈 때마다 임진왜란의 화마에 휩쓸려 그 후 복원 되었다는 글귀를 마주 하게 되는데 그 때 그 순간이 얼마나 긴박하고 고통스러웠는가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