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속삭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얼굴을 마주대고 나뭇잎이 나부끼듯 숨길 수 없는 훈김이 나오며 새하얀 솜털이 떨리듯 다가온다. 섬세하고, 흐느끼듯 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만약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과잉 시켰더라면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평범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백발이 된 한 노인에 의해 시작된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처럼 자신의 젊은, 열 다섯살의 소녀의 모습으로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929년의 프랑스령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인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의 남자. 소녀는 열 다섯살이지만 몸이 비치는 생사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조숙한 여자이며 남자는 부유하지만 온실속의 화초처럼 연약한 줄기로서의 생명력을 갖고 있는 남자다. 이를테면 소녀는 중국인 남자 보다는 잡초처럼 자랐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어머니와 큰 오빠, 작은 오빠와의 사이에서 숨을 쉬며 살아간다.

 

큰오빠만을 좋아하는 엄마, 마약과 노름에 빠져있는 큰 오빠, 큰 오빠에 시달리는 작은 오빠와의 사이에서 소녀는 중국남자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흐느끼듯 흘러내리지 않는 갈망 속에서 서로를 갈구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어린날의 추억이지만 가슴 한편에 잊을 수 없는 짧지만 강렬한 속삭임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들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지속된다.

 

비정상적으로 계속 중독되어 가는 연인의 앞 길은 평탄하지 않는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으로 만든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영화처럼 그들의 관계는 짧고 강렬하게 끝을 맺지만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내내 여운은 계속된다. 오래전에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날듯말듯 하여 다시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만큼이나 섬세한 묘사는 가히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 할 만큼 여성적인 문체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끝없는 열정에 중독되어 서로의 욕망과 갈망을 드러내고 서러운 결합을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자신만의 테두리에서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일종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방구처럼 무엇이든 터트릴 수 있는 시간들. 흩어진 기억을 찾고 찾은 조각들은 아련하면서도 깊은 여운과 열망을 가져다준다. 지금의 잣대로 보여지는 것보다 그 시대의 소녀와 중국인 남자가 되어 '끌림'의 시간속으로 가는 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