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먼저 이 책은 제작진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이 책은 PD수첩의 前 제작진이 썼으며,이 책에 실린 기고문도 한 언론매체에 연재된 것이라는 것도 밝힌다. 내가 이것을 밝히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나에게 큰 반향을 줬고,여기에 제작진의 울분이 들어간 심상치 않은 책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동안 나는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MBC와 <PD 수첩> 사이 여러 이야기들 중 어느게 진짜인지 몰랐다. 그래서 어느 주장에 대해서 의심도 했었고,또 어느 주장에 대해서 심하게 믿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PD수첩>이 2012년 초부터 방송을 중단하다가 12월이 되서야 새로운 PD,작가를 고용하여 다시 방송을 시작했고 또 그동안 있었던 여러 사태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면서 과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다 자세하게 본다면 이 책은 올해 있었던 일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멀게는 지난 2008년 황우석 논문 조작부터 4대강 사업,민간인 불법 사찰,검사와 스폰서,미국산 쇠고기 파문 등 우리에게 큰 화제를 일으켰던 사건들을 제작하고 방송할 당시 있었던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있었던 파업과 그동안 제작 PD,작가들이 느꼈던 소회를 다룬 기고글과 함께 이들에 대한 여러 인사들의 지지문도 실려있다. 정말 이 책만 읽고 나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올랐다. 우리가 느낄 수 없었던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니.. 그 일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한 PD의 이야기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왜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PD수첩>인지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PD수첩>은 본연 그대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다. 그 역할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프로그램의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건 책임회피이자 직무유기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방송이나 언론에 대한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내가 취재해서 직접 기사까지 써서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는 기분이 어떠할 지 생각만 해도 짜릿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일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서 물론 저자가 실명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아마 검색만 하더라도 누구인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단지 사람 몇 명이 죽은 게 대수냐느니,노사문제를 단지 시위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야라고 표현한 부분이라든지,또 심사숙고한 기획안을 단번에 찢어버린 모 인물의 행동들은 그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PD들에게는 정말이지 치욕이고 PD로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어제 방송된 <추적 60분> 송년특집에서 <PD수첩>에서 다루려 했다가 방송되지 못했던 한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PD수첩>에서 방송했어야 했는데 모 인물의 묵살로 결국 방송되지 못하고 <추적 60분>을 통해 방송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 아이템은 방송했던 방송사에서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순전히 아이템을 기획하고 취재한 PD만 징계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2월 다시 방송을 시작했지만,PD의 나레이션이 없는 것이나 기존의 PD,작가가 아닌 소수의 새로운 PD,작가 기용만으로는 완벽한 <PD수첩>이라고 할 수 없다. 처음에 PD,작가들의 행동에 대해 갸우뚱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당장은 어렵겠지만 다시 그들이 돌아와 완벽한 <PD수첩>으로 다시 방송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1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