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무섭습니다. <내가 죽인 소녀>라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또 그럽니다. ‘살인, 죽음’ 이런 단어 들어간 책 또 본다고.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아무튼 간에 이번에 읽은 <내가 죽인 소녀>는 단순한 스릴러 추리 소설과는 좀 다릅니다. 소위 말하는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이라고 하죠. 탐정이 단지 의자에 앉아서 담배연기 쭉쭉 뿜으며 머리를 굴리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현장에 직접 뛰어들고, 악당들과 마구 부딪히며 피를 흘리기도 하고, 폭행을 당하기도 하면서 몸으로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그런 스타일이죠. 물론 무식한 탐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남자답고 쿨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참 특이합니다. 소설의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내가 죽인 소녀>라는 제목은 주인공이 탐정이자 살인자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추리소설의 10가지 원칙에 어긋나는 설정이죠. 그런데 제목처럼 탐정이 살인자는 아닙니다. 탐정은 사건에서 일종의 피해자이자 범인의 장기말 같은 존재이더군요. 흠... 탐정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주인공인 탐정 사와자키는 처음부터 한 방 맞고 시작하는군요.

 사라진 소녀를 찾는 의뢰에 엮인 탐정 사와자키. 의뢰인의 집을 방문함과 동시에 경찰에 체포됩니다. 의뢰인은 사와자키를 공범이라고 의심하며 6천만 엔 이라는 거금을 안겨주며 딸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경찰들의 집요한 취조와 함께 이것이 범인이 꾸민 기가 막힌 계략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와자키는 직접 범인에게 몸값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나, 불량배들에게 습격당하고 몸값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돈도 잃어버리고 사라진 소녀는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 초래되어 경찰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던 사와자키. 그러던 중 사와자키는 소녀의 삼촌으로부터 의뢰를 또 받게 되어 조사를 하던 중 부패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범행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사라진 거액의 몸값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하드 보일드 추리 소설은 그리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 워낙에나 두뇌 싸움을 좋아하는지라 ‘탐정의 원맨쇼’ 보다는 ‘독자에게 도전한다!’ 라는 방식의 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런 편견과는 다르게 <내가 죽인 소녀>는 상당히 괜찮은 하드 보일드 소설이었습니다. 까칠하기도 하지만 동정이 가기도 하는 그런 탐정입니다. 아마도 하드 보일드의 성격을 가장 제대로 띄는 부분이라면, 소설 속에서 사와자키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겠군요. 정말 고독이 등 뒤에서 묻어나오는 모습입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모습에 박수도 보내고 싶더군요.

 이 소설은 일본 대중 문학의 최고 상인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제가 나오키 상 수상작을 좀 사냥하고 있는 편이라 상당히 관심있게 읽었는데요. 나름 몰입도도 있고, 다음이 궁금해지는, 특히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여러 사건이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었구나... 라며 극적인 반전을 선사하는 결말이 마음에 드는군요. 본격 추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