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가족 레시피 - 손현주

 

힘겨운 현실에서도 마음을 성장시켜 나가는 17세 소녀, 여울이의 이야기.

불량가족 레시피, 그야말로 온갖 불량한 경우가 다 모여있는 레시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 출신으로써 식구들에게 걸쭉한 사투리와 함께 독하고 모진 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할머니와, 채권추심 하청일을 하면서 직원들 월급 떼먹기는 예사요, 이젠 아예 식구들마저 채권추심 업무에 동원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대책없는 바람둥이에 건달 포스의 아빠, 기러기 가족으로 위장 이혼 했다, 정말 버림받고 뇌경색으로 수술까지 한 삼촌에, 다발경화증이라는 고질병으로 20살이 넘어도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하는 이복 오빠와 자신만 보면 못 잡아 먹어 안달인 남보다 더 거리가 멀게느껴지는 이복 언니에 가출한 뒤 연락이 끊긴 바람둥이 할아버지까지.

 

어느 누구를 봐도 평범하다고 말하기 힘든 이들의 조합. 이 책,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어느하나 평범하다거나 예사로운 식구가 없다. 혼외자로 태어나 집안에서 온갖 구박이란 구박을 다 받으며 살아온 주인공 17세 권여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거북해진다랄까. 원해서 태어난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17년동안 참으로 모질게도 힘들게 했던 가족들의 모습에서 분노마저 느껴진다.

 

그 많은 식구들이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며 스스로만을 위하면서 가족들에게 무책임함으로 일관되게 행동하는 모습에서 짜증이 치솟는다. 가족이 아무리 많아도 서로가 서로에게서 고립되어 외로워하는 식구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들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이들 가족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무신경한 말투와 독설들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힐것만 같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때로는 서로간에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그 선을 너무나도 쉽게 뛰어넘어 다닌다. 한번 못이 되어 박힌 상처는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쌓이고 쌓인 독설들이 독자인 내 가슴에도 아프게 박힌다.

 

가족간의 외로움과 불행의 씨앗이 되는 무관심과 무책임한 행동들은 결국 그들을 타인보다 못한 가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가족에 대한 의무나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수가 없을것만 같은 가족들의 행동. 나 하나를 위해 남은 가족들의 안녕따위는 뒷전인 행태들을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여고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렵지 않고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해내고있다.

 

오히려 말하기 어려운 주제이고, 무거운 주제이기에 주인공인 여울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점자체가 굉장히 탁월했고, 또한 여고생 특유의 가벼운 말투 등으로  이야기들을 너무 무겁고 우울하지 않게 풀어냄으로써 독자로써는 책 읽는 즐거움이 훨씬 더 배가시켜준다.  게다가 여고생 특유의 가벼운 문장과 말투일지언정, 간간히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그녀의 생각이나 어휘구사력등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삐뚤어진 불량 가족에 대한 실랄한 이야기지만 무겁지 않은게 이 책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더불어, 책속의 불량 가족들의 무책임한 독설에 독자가 다 상처받을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가독성있고, 흡입력이 좋은 대단히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위태로운 가족 사이에서 마음 둘 곳 찾지 못한 주인공 여울이가 코스튬플레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통해 가족 안의 세상이 아닌 나만의 독립된 세상을 갖길 꿈꾸는 가출이 갖는 상징성도 대단히 크다.  더불어 가족과 나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균형있게 교차시켜 나가며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는 구성 방식 또한 마음에 든다.

 

가족 안의 작은 점이었을 뿐이던 여울이가 자신만의 세계를 점점 넓혀 세상과 가족 사이에 자신만의 테두리를 만들고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 나가는 모습이 어쩐지 마음 짠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이고 힘들게만 하는 가족들이지만, 그런 가족들을 겪으며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도 점점 자라나 결국에는 훌쩍 성장해 비관적이기만 하던 모습에서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 그지 없다.

 

결국 인생이란, 태생부터 평등하지 않게 출발한다는걸 17세 소녀가 이미 알아버렸다는 점이 그저 씁쓸하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는 현실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더 없이 불량한 가족들이고 상처 밖에 주고 받은게 없는 가족들이지만, 결국 가족을 벗어나려던 생각을 접고 스스로 일어나 가족들을 건사해야겠다고 마음 먹어가는 그 과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무척이나 짠하다.

 

이 책은 결국, 짧은 시간안에 인생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많이 경험한 주인공 여울이의 마음이 자라나고있는 이야기다.

 

가족을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여울이만의 세계였던 코스튬플레이라는 알을 깨고, 가족과 세상 사이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들. . 인생을 살면서 마음을 고쳐먹기란 정말 힘든이지만, 그걸 알기에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하다.

 

모든 인간들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성장하기만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다소의 위기와 불행은 결국 그 사람을 더 단단히 만들고 성장할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여울이는 자라고있다

 

청소년들뿐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무척이나 소중한 이야기가 될것같다. 유쾌하고 가벼운 문장 속에 많은 것이 녹아있는 책이다. 마냥 소설속의 이야기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없이 리얼하고 진솔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이야기. 짜증내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절망과 좌절을 거쳐 결국 희망을 움켜쥐려는 그녀의 미래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