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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여서 작가 소개부터 천천히 봤다. 우리나라에는 <조직된 한패> 한권이 출간됐지만 이미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성과 상업적인 면에서 모두 인정받은 작가였다. 첫 소설 <도시의 소녀>로 푸케 데쿠베르트상을 받았고, 금융 트레이더의 활약상을 담은 <내가 세기를 청산하는 방법>으로 장 아밀라-맥케르상과 라이온스클럽 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금융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으로 엥테랄리에상 최종 후보작으로 올랐다고 한다. 수상이력에 기대도 됐고 소재도 관심있었지만 경제나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걱정스럽기도했다.

역시 읽는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직업이나 중심사건 모두 경제와 금융의 범위안에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 나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세계였다. 아직 막연한 관심만 있을뿐이어서 시작부터 묘사되는 장면 하나하나가 낯설었다. 직원의 모든 정보가 감독, 관리되는 회사라니...... 회사를 위해 전투적으로 일하고 모두가 똑같아지며 입사했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런 분위기도 내겐 박물관 속 유물만큼 멀다. 그런데도 페이지는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고 전개속도도 빨라 이것 또한 신기하고 조금 얼떨떨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출간되길 기다리게됐다.

미국의 다국적 투자은행 폴만팍스의 유럽 금융협상 전문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세바스티앙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뉴욕 본사로 호출받았다. 최근 몇년간 가정조차 건사하지 못하고 일에만 매달려왔다. 그에게 남은건 일뿐이었다. 마침 뉴욕은 도로가 통제되어 차가 꽉 막혀있고 회사 근처는 시위하는 사람들로 점거되어 있었다. 이 난리를 뚫고 겨우 도착한 그에게 CEO인 캠플린은 그리스 회계장부를 조작한 일을 은폐하라고 지시한다. 자신의 앞날을 계산하면서 비서로부터 건네받은 서류를 보는 세바스티앙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 일에 대해 알아보던중 큰손들의 뒷거래가 있었음을 알고난 세바스티앙은 분노하며 대학 동창들을 찾아간다. 정치, 금융, 언론 등의 각계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동창들에게 진실을 밝힐 뜻을 전하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모두들 거절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하는 그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몸을 사리지 않을까. 세계제일 규모의 금융기업과 정치계를 단체도 아닌 개인이 맞선다는게 무모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이 일에 휘말려간다. 이제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과 숨기려는 자들의 싸움이다.

예전에는 정치도 경제도 골치아프게만 보여서 싫었다. 나이가 먹고나니 겨우 알았다. 누구도 그쪽 분야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면 알수록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분명히 영향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조차도 그렇지만 정치와 경제 역시 서로 연관지어질때가 많다. 때문에 이런 분야에 대해 잘 아는것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여러모로 차이가 생겨난다. 알고있던 것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책을 읽으니 오싹하기도 하고 몸이 축 가라앉는 기분도 든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IMF와 금모으기 운동, 그리스 사태를 생각하면 이 책이 소설이라는걸 잠시 잊기도 한다. 비밀은 정보에 어두운 자들에게만 먹힐 뿐이다. (p.87) 그래서 이 문장이 참 따갑게 다가온다.

경제스릴러로서 무척 재미있고 뼈대도 있는 소설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마음에도 절로 눈길이 갔다. 다들 쟁쟁하게 잘나가는 동창들이지만 이상적인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번다. 똑똑하고 재능있으며 성공적인 경력관리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갈증을 느끼면서 더 높은 자리, 큰 성공으로 채우려고 한다. 자기 마음도 다독이지 못한채로 현실에서 달려가기 바쁜 모습이 정말 냉소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들의 모습에서도 여러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런 면에서도 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너무도 모른다는걸 거울처럼 비춰주는 책이었지만 우리나라도 그리스와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할 수 있고 이대로는 그런 때가 왔을때 그대로 무너질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게해준다. 이야기 초반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시위대의 플랜카드에 쓰인 글귀중에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 문장이 있다. 우리는 99%들이다. 어떻게 하면 99%의 힘이 있는 그대로 압도적인 99%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꿈같은 일인가 싶기도 하다. 작가의 말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아는것, 그것부터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아직 그것밖에 모르겠다. 알리고 싶었다던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을 통해 제공된 도서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