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숙종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데 희한하게도 역모를 꿈꾸고 움직인 사람들은 권력에서 밀려난 양반도 아니고 농기구를 무기로 휘두르는 일반 백성도 아니다. 신앙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이 역모를 꿈꾼다. 그들에겐 신기한 능력이 있고 자신들의 뒤에 신이 계신다고 믿으니 크게 두려울것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 원망을 쌓으면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역사속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은 얻지만 동시에 천시받았다. 일반 사람들보다도 더 천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표면에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별로 없다는건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

  사람들이 역모를 가능한 꿈으로 꾸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여환과 원향이 있다. 사람들은 여환을 미륵이 점지한 사람, 즉 미륵의 현신으로 여겼다. 또한 무녀인 원향을 용녀라고 불렀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환멸을 느낀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그럴려면 지금 이 쓸모없는 세상은 사라져야 한다. 미륵과 용이 만나면, 여환과 원향이라면 이 나라를 쓸어버릴 큰 비를 내려 뒤집어 엎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가 평등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 세상이 열릴거라고 믿었다. 읽는동안 조금 답답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진지하게 믿고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할까.

​

  이야기는 역모를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도성으로 이동하는 약 3일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집단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의지가 있었다. 큰 비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역모의 꿈은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조명해 등장인물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무녀에 대한 내용은 약간 놀랐다. 이런걸 소설속에 녹여내기 위해 얼마나 조사하고 공부하고 고민했을까. 스치듯 잠깐 본적이 있던 어떤 방송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신내림을 받았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신을 온전히 받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수양하고 노력해야하는 나날들. 그렇다고 해서 그 노력이 부귀나 영화로 이어지지 않고 되려 괄시와 위험속에 내던져지는 삶. 개개인에 대한 세심하고 풍부한 이야기로 감정이입이 쉬워졌다.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는 묵직하고 둔해진 인상이 있었다. 소재는 역모인데 그보다는 다른데에 비중이 커진 탓이다. 2권 이상의 분량이었다면 훨씬 좋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

  작가는 책에 무당의 꿈을 꾸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꿈에서 무당에게 방울을 받고 흔들었는데 그 방울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해몽에는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데 다행히(?) 현실에선 무녀가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큰 상을 받았다. 사건의 흐름으로만 보면 느리고 끝이 약한 인상이지만 그래도 좋은 느낌을 받았다. 옛날 느낌에 흠뻑 빠져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번 더 기대하고 싶어졌다. 분명 더욱 힘있게 달려가는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오랜만에 작가 이름을 의식적으로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