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작가를 만나는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맛집 폭격>으로 처음 만났다. 그때의 기억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내겐 어쩐지 어렵게 느껴지고 낯설었다.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 그동안 내가 너무도 쉽고 재미에만 치우쳐서 글을 읽어온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을 알게됐다. 참 신기하게도 궁금했다. 결코 편하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보고싶은 마음이 슬쩍 들고 궁금하고 괜히 한번은 더 돌아보게됐다. 이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거기다 이번엔 제목부터 내 취향과 너무 잘 맞았다. 고고학도 관심있지만 심령현상이나 귀신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즐기던 소재였다. 고작 한번 접한게 전부인 작가였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작가라면 누가써도 비슷비슷한 귀신이야기를 색다르게 쓸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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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그럴듯해서 정말 있는것같은 고고심령학은 순전히 작가가 만들어낸 학문이다. 그 옛날 사람들의 언어는 어땠을까 라는 고고학적 질문에 대해 아주 심플하게 그 당시의 혼령을 불러내어 말을 들어보면 되지 라는 사고방식을 취하는게 고고심령학이다. 혼령이라는 존재를 이용하지 않는다거나 심령학이라는 비과학적 방식을 취하기는 해도 그 검증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과학적인 절차를 따른다는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었다. 원래 과학이라는게 심령보다도 더 하찮게 취급될 수 있는 누군가의 상상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정리하고 증명해내는것 아니었나.... 가상의 분야이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속 어느 구절에서 나온대로 세상 어딘가에 비밀결사들처럼 알려지길 거부하며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는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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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 방식 탓인지 고고심령학은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였고 공인된 자격이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홀린듯 접근하고 연구자로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도 특히 구석으로 밀려 연구에만 파고든 문인지 박사는 대대로 부자인 집안 사람의 사적인 후원으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된 천문대를 개인 연구실삼아 벌써 15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고고심령학계의 거목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온갖 자료와 책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문박사의 연구실을 그의 제자 조은수가 맡아서 하게됐다. 그리고 그 무렵 서울에서 이상한 검은 성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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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데없이 나타난 검은 성벽은 갑자기 나타날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졌다. 그 성벽이 고고심령학자인 은수의 귀로 흘러들어간 것은 성벽이 나타날때 사람들이 겪은 일이 심령현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벽의 존재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했으면서도 당연한듯 성벽의 주위를 돌아서 다녔다.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불현듯 왜 그 길을 돌아서 왔을까 의문을 갖게됐다. 성벽은 연이어서 출몰했고 점점 사람들의 경험담도 늘어났다.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상황에 대한 회의가 소집됐고 은수도 참여했다. 그곳에서 스승의 오랜 친구라는 한나 파키노티라는 연구자를 만나 새로운 의문점을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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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처음엔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다. 페이지는 넘어가는데도 쏙 빠져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스승의 연구궤적을 복원하는일과 서울에 나타난 검은 성벽, 장기나 체스와 코끼리, 천문대의 아이 혼령까지.... 이게 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이렇게 마구 섞여 진행되는걸까... 접점이 어느정도 드러나기 전까지는 조금 답답함과 궁금함이 있었다. 하지만 진행될수록 재미있었다. 작가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과학이나 SF라는 이미지하고도 맞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때문에 이전에 비해 한층 좋은 인상이 생겨났다. 아는게 참 많아보이는 작가같다. 다음 이야기엔 그 지성을 어떻게 이야기에 녹여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