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기 2초전>이라는 책으로 한국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 아녜스 르디그의 신작이다. 그녀는 아픈 아들의 차도를 전하는 메일을 지인들에게 꾸준히 보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보낸 메일은 그녀 자신에게도 감정을 풀어내는 배출구가 되었고 지인들 역시 메일을 통해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결국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그녀의 책은 2번째 작품이고 이번 책은 3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작품의 수는 적지만 벌써 그녀는 현재 프랑스에서 안나 가발다와 마르크 레비를 잇는 작가로 자림매김 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처음 소개글을 봤을때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바로 '희망에게 버림받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에게 돈에게 때론 비유적으로 신에게 버림받는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희망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버리는 주체가 희망이라고 하니까 한결 슬프게 들렸다. 희망이 내게 등을 돌려버린다, 희망에게서 버림받는다니. 생각해본적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구이다. 이런 말을 내뱉은 사람은 주인공의 매력적인 할머니 마리루이즈였다. 보면 볼수록 점점 좋아지는 할머니였다. 이렇게 멋진 할머니를 두고도 왜 손녀딸 줄리에트는 나쁜 남자에게서 상처를 받을까 답답했다.

  이 책의 주인공 줄리에트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36살이다. 은행 간부여서 돈을 잘 버는 남자 로랑을 만나 함께 살고 있다. 줄리에트는 로랑을 사랑한다. 그가 떠나는걸 원치 않기때문에 그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의 무례함과 폭언, 폭력을 참아낸다. 결혼하고 싶지만 로랑이 아직 빠르다고 하니 못하고 아이를 갖고 싶지만 그가 원하지 않고 협조하지도 않으니 또한 안된다. 사람은 자기의 일이 되면 다들 그렇게 둔하고 바보에 겁쟁이가 되는걸까. 그녀는 로랑이 자신의 일과 의견을 무시할때 자기주장을 해야했다. 냉장고에 맥주가 없다는 이유로 짜증낼때 스스로 장을 보라고 말해야 했다. 무엇보다 약속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줄리에트의 탓으로 돌리며 남들앞에서 가볍게 그녀를 웃음꺼리로 만들때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더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야했다. 세상에 남자가 그놈 하나가 아닌데...

  여주인공에 어울리게 남자주인공의 이름은 로미오이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문자메세지로 버림받았다. 그리고 그날 소방관으로서 일을 하다가 사고가 생겨 9층높이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겨진 그를 처음 담당한 간호사가 줄리에트였다. 25살의 한창 나이인데 그는 14살 여동생 바네사의 법적보호자였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튼튼하고 강한 울타리로 있어야 하는데 이젠 자기 몸조차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몸은 아프고 여동생은 충격받았는지 잘 찾아오지 않고 미래는 참담하다. 그런 그에게 희망을 주고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은 간호사인 줄리에트였다. 간호수칙까지 어겨가며 몰래 포옹을 해주기도 하고 때론 따끔하게 희생자인척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녀를 로미오는 어느덧 사랑하게 됐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로미오도 줄리에트도 상처를 안고 있었다. 다른사람의 눈에 그토록 훌륭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어엿한 성인인 그들도 여전히 어리고 약한부분이 있었다.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에 고쳐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실제로 행하는건 힘들다. 다치는건 아프지 않지만 낫는 과정은 아프다던 책속의 구절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아지는 과정의 사람을 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주고 응원하고 진심으로 그들이 이겨내길 바라게된다. 내가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의 해피엔딩을 바란것처럼 말이다. 나도 함께 위안을 얻은 기분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훗날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할때 서로간에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잘 살펴야겠다고 느꼈다. 정말 행복하고 따뜻하고 오랜 사랑이 갖춰야할 필요조건은 존중같다. 아니, 사랑뿐만은 아닌가. <그와 함께 떠나버려>는 그런 사랑을 향하고 보여주기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