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환영하는 작가 김진명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이번 책은 다른 어느책 못지않게 내용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다른것도 아니고 글자로 인한 전쟁을 한다는게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표지의 제목 밑에 쓰인 문구를 봐도 아무 감이 안오는건 마찬가지였다. 한자에 대한 이야기같은데 한자를 잘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신경쓰이는건 언제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써왔던 작가가 한자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이었다. 한자랑 우리나라, 무슨 관련이 있던가?

 

  한껏 미궁속을 헤매다 표지를 넘겨 읽기 시작했더니 심각하고 암울한 장면이 잠깐 나오다가 금새 어느 똑똑한 청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려서부터 수재라는 소리를 들어온 이태민은 돈을 많이 버는게 목표다. 그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칼텍 물리학과에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라면 20대에 박사학위를 거뜬히 받을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학부과정 이후 국제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석사과정을 밟으며 특히 중국어 공부에 필사적인 노력을 쏟아부은 그는 공부를 끝낸 후 무기제조업체에 취업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안돼서 헤비급 사원이 됐고 그의 이름은 회사의 이사진은 물론 미국의 각종 정보기관에도 찾아올만큼 널리 알려졌다.

 

  표지는 오직 한자이야기만 할것같더니 시작은 무기회사에서 잘나가는 머리좋은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이다. 이게 어떻게 글자하고 연결이 되려나 싶어 읽다말고 남은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봤다. 글자색이 다른 페이지가 보였고 단어들이 시대극을 보는것같은 것들로 채워진 곳이 있어 이게 대체 뭔가 싶어 더욱 궁금했다. 글자와의 접점은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어쨌거나 자신감 넘치는 무기영업사원 이태민은 곧 사표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불과 2년만에 50억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돈은 압수당하고 검찰조사를 받게 됐으며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나쁘다고 판단한 태민은 그대로 중국으로 도주했다.

 

  중국에서 재기의 기회를 엿보며 숨죽이고 있는 태민의 눈에 이상한 남자가 들어왔다.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일체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는 그를 킬리만자로라고 별명지었다. 하지만 어느날 그에게서 연락이 오고 usb를 건네받은 이후 들이닥친 공안을 통해 그가 살해당했음을 알게된다. 중국의 약점이라며 급하게 건넨 usb가 마음에 걸린 태민은 조심스레 내용을 살피지만 거기엔 쓰다 만 소설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이것과 중국의 약점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고민하는 한편 무기중개상으로서 다시 일어설 때를 기다리는 태민의 일상이 그려진다.

 

  이제 겨우 나온 글자와의 연결고리는 뜻밖에도 소설이었다. 이야기상으로 보면 태민은 그저 살인사건에 휘말린것 뿐이다. 태민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이해됐다. 한편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되면 됐지 조금도 이득이 없는 살인사건의 진상에 자꾸 마음을 쓰게 되는 모습도 공감이 됐다. 나도 묘하게 계속 궁금하고 자꾸 알고싶은 마음이 있다는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 표지에 쓰인 뭐가 뭐를 없애고 지키라는 수수께끼같은 문구를 이해했을때 머리가 멍해졌다. 놀라서 선뜻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진짜? 정말이야? 정도밖에 생각나는게 없었다.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이 너무 미비하다는걸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당당하게 소리를 내야할때도 내지 못하고 소리없이 진행되는 역사 쟁탈 작업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속상한 일이다. 유쾌하지 못한 일이어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어느새 잊기 쉬운데 김진명 작가의 책은 이를 계속 일깨워준다. 물론 재미있지만 좋다 한마디로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 한켠이 불안하고 씁쓸하지만 안볼 수 없게 만든다.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니 우리의 역사와 뮨화유산은 우리가 아는것보다 훨씬 크고 훌륭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 두근거리고 설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