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저자는 2002년에 이 책을 냈다. 전문작가도 아니었고 더구나 첫 작품인데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여러 나라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여러 상도 수상하게 됐다. 죽은 가정부에게서 온 편지로 인한 소동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소개되는 글귀들이 대단했다. 특히 지적 유희라는 단어에 눈을 빼앗겼다.

 

  주인공 멘눌라라는 시작부터 죽어있어서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나온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마리아 로살리아 인제릴로라는 반듯한 이름을 갖고있지만 '아몬드를 줍는 여자'라는 뜻의 멘눌라라로 불리고 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열 세살에 알팔리페가의 하녀로 일하기 시작했다. 평생 그 집안을 위해 일했지만 단순히 하녀로 살지만은 않았다는게 흥미롭다. 그녀는 하녀이면서 재정관리까지 맡아 수완을 발휘하면서 힘이 커졌다. 그리고 죽은 후, 자신이 일했던 그 집안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겨 장례식에 대해 지시를 한다.

 

  그녀는 십대였던 어린 나이에 들어와 55세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알팔리페가에서 일했다. 당연히 그 집안 사람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몇가지 지시사항을 남겼지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는것처럼 또 다른 편지를 통해 자신이 남긴 말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유산이라는 당근을 원하는 알팔리페가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어떻게 단순한 가정부가 재산관리를 할 수 있는건지 빨리 납득이 안되고 그래서 더 이 상황이 웃기게 보였다.

 

  물론 알팔리페가의 가족들은 그녀에게 화가나있다. 아무리 돈을 쥐고 있다고는 해도 엄연히 자신들이 부리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녀가 자신들을 부리는 꼴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멘눌라라의 죽음에 대해 눈꼽만큼도 슬퍼하지 않았기에 그리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 못된다는건 금방 알았다. 그래도 죽은 사람의 글귀에 흔들리는 상황에 욕을 해대는 마음은 조금 이해가 됐다. 신기하게도 주인공에 대해 욕하는건 그집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들 그녀에 대해 한마디씩 했는데 좋은 기억은 별로 없고 나쁜 기억과 평판이 너무도 자자했다. 놀라울만큼 다들 한마디씩 해서 내가 다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마을과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생동감 있어서 노래가 없는데도 오페라 공연의 한장면같은 느낌이 들었다.

 

  괴팍하고 억척스럽고 힘이 세고 목소리도 크며 사나운 멘눌라라의 초반 평가는 솔직히 최악으로 보였다. 하지만 점점 그녀에 대해, 그녀가 했던 일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다른 바람이 흘러든다. 처음 이 책에 대해 광고글을 봤을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다면 일단 죽어야 한다 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것이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회상을 통한 남은 사람들의 평가인가 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버릇없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까칠했던 멘눌라라는 죽고나서 그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게 됐다. 타들어갈것처럼 너무도 뜨겁게 살았던 사람. 내가 죽은 뒤 밝혀지게 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절대로 지금은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런 사람 보고 난 지금 부러움과 질투심이 섞여, '아니지. 지금은 아니지. 당연히 안되지...'라고 중얼거렸다.

 

  이름이 낯설어 처음엔 무척 읽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말도 많은지 기가 빨리는것도 같았다. 그래도 어릴때 외국의 고전을 읽으면서 느낀 그 느낌을 다시 느끼게되어 좋았다. 고전으로 남아도 좋을 책 같다는게 솔직한 느낌이다. 후속작도 무척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