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개인적으로 삼국시대(고구려, 신라, 백제) 중 가장 좋아하는 국가는 백제다.

10여 년 전에 여행으로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고 백제에 빠져들었다.

목탑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은듯하면서 석탑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 있었던

정림사지 석탑은 나를 옛 과거 백제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678년간 거의 7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백제

그 이야기를 찾아 두발로 걸어 백제를 찾아 책으로 쓴 '백제의 길 위에 서서'

차준완 작가의 책이다.

차 작가의 이력을 보면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 외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렇게 백제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궁금해진다.

머리말에서 간략히 그 이유를 쓰고 있지만 조금은 막연해 보이는데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에서 그 동기부여를 했던 것은 아닐까?

이 책 속 사진은 모두 흑백사진으로 되어있다.

아마도 옛 맛을 좀 더 리얼하게 살리고자 하는 의도였을 듯 보인다.

책 속 내용에서 작가가 백제의 흔적을 찾아가본 곳 중 대부분 나도 한 번은 가본 곳이다.

무량사에서는 부여 정림사지와 매우 닮은 탑을 봤고,

월남사지에서도 한눈에 보고도 백제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백제만의 느낌이 잘 표현된 탑을 보고도 나는 정림사지 5층 탑이 생각났다.

나는 백제탑에서 엉뚱하지만 철길의 침목이 생각났다.

요즘이야 철길의 침목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오래전엔 나무로 침목을 만들었는데

시커먼 기름칠을 하여 썩지 않게 방수처리가 되어 있었다.

백제탑에서 나는 왜 침목이 오버랩 되었을까?

투박한 모습이 그 이유였을까?

아니면 석질 특성상 어둡게 퇴색된 탑의 색깔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백제 678년은 그렇게 짧은 세월이 아니다.

신라 1000년의 세월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서울을 수도로 삼았던 한성백제 기간이 493년,

공주로 옮긴 웅진백제시대 62년, 다시 부여로 옮겨 사비시대 123년간을 끝으로

백제는 패망하였다.

700여 년에 이르는 세월의 절반 이상은 서울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의 백제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고까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마구잡이로 파헤쳐지는 국토에서 문화재 흔적이 발견되면

업자들은 쉬쉬하기 바쁘고 그대로 그 흔적들을 무시한 채 공사를 하여

아파트를 짓고 건물을 세웠다.

유구한 옛 역사를 자기네 가문의 추악한 모습인양 들추어 내길 꺼려했던 것 은

무지한 우리들 욕심에서부터 시작된 역사와 문화를 짓밟는 학살이다.

아니면 역사의식 결여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잃어버린 왕국' 으로 표현되고 삼국 중에 최고의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흔적은

신라에 비하면 참으로 빈약한 모습만 지금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패망된 국가라서 많은 유산들이 파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무책임한 의식이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고 보인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한 권의 책으로 그냥 읽고 넘어가기엔 아쉬움이 많은 것이다.

사람 사이에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 우리의 문화재도 그렇다.

이 책의 목록만 봐도 책을 반은 읽은 것 같다.

뉴스 기사를 보면 큰 제목인 헤드라인만 보고도 그 내용을 어림짐작해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목록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큰제목에 포함되어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날 그곳을 갔을 때를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지식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아주 어설픈 시기라서 많이 부족했었다.

그런 부분이 지금 많이 아쉽게 다가온다.

지금 다시 그곳을 가게 된다면 한 곳에만 하루를 보낼 것이다.

탑 하나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망부석이 되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백제의 문화는 신라나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고구려 문화와 또 다른 맛이 있다.

일본에서는 극구 부인을 하고 있지만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를 꽃피우는데

일조를 했다는 사실이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문화의 흔적을 일본은 자기들 고유의 문화 인양 우기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싶다.

책을 탈고하고도 작가는 아직 백제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서고 있다고 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백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어느 유적에서 작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조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잠들어 있는 백제의 혼을 깨우려 먼 길을 떠나고 싶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