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의 작가 김진송은 개인적으로 참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 작가는 마치 카멜레온 같다. 김진송의 이름을 가장 처음 접했던 것은 일제 치하에서의 우리나라 근대를 전혀 새롭게 보게 했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통해서였다. 그 어떤 문화라고는 존재치 않았을, 오로지 문화의 암흑기로만 여겼던 그 시대에도 어쨌든 활발한 문화적 움직임이 생성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모던'이라는 것이 어떻게 우리들 일상으로 흡수되어 갔는가를 그 책은 정말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그 책은 그리 인기있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인기는 그야말로 상당했는데 그 때문에 그와 비슷한 책이 여러 권 나오기도 했다. 그 책이 그렇게 유명세를 떨쳤던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김진송은 정말 글을 맛깔스럽게 잘 썼다. 그 때문에 일제 치하의 일상을 접하면서도 마치 정말 내가 그 속에 있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책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나중에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갑자기 인문학자에서 소설가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어려운 인문도 쉽게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야기에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그렇게 그는 인문학자에서 소설가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걸 그는 두 가지나 해낸 것이다. 하지만 변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무언가로 변신했다. 이번엔 목공예가였다. 그는 스스로를 목수 김씨라 부르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이 아니라 이제는 나무로 표현했다. 이야기가 언어가 아니라 사물이 됨으로써 구체적인 물질성을 더욱 얻을 수 있었던 반면 그 사이에 빠져버린 언어들을 이제 우리의 생각들이 채우게 됨으로써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는 더욱 넓어졌다. 그렇게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또는 보는 독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는 어느 누군가의 머리 속에 홀로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이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번에 나온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그렇게 이야기가 '공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의 이야기가 글만이 아니라 실제 나무 조각과 더불어 작품이 되듯이, 그리고 그 나무 조각과 글 사이에 빠져 버린 이야기의 흐름을 또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가 메우게 되듯이, 그렇게 작가와 독자가 글과 나무가 함께 협연을 하듯 연주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이 책엔 정말 사랑스러운 조각들이 많다. 원래는 움직일 수 있게 고안된 것 같은데 사진으로 밖에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볼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글이 그 조각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으므로 그 아쉬움이 조금 던다. 아무튼 뭔가 정겨움 같은 것이 잔뜩 묻어나는 책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일수록 벗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만드는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