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눈길이 머문다. 金요일이 아니라 '禁요일'이다.

이제는 '불금'이라는 말이 거의 공공연히 통용될 정도로 금요일이란 한 주 간에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비로소 풀 수 있는 날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참인데 바로 그 금요일을 '금지된 요일'로 바꾸어 버리다니! 이건 마치 삶에 있어 그런 날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이 책이 선언하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가!

 그런 발칙함이 마음에 들었달까? 해서 전혀 모르는 작가에 모르는 작품이었지만 손에 들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웹툰에 연재한 작품이었고 인기도 꽤 얻었던 작품이었다. 하긴 그랬으니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왔겠지만. 작가의 이름은 배진수. 이미 고교 때부터 'ZINUS'란 닉네임으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가 PC통신을 장악했던 시절 아마추어 작가로 활동했었고 인기도 제법 얻었다고 한다. 그러다 입시 때문에 그 세계를 떠났고 제약회사의 직장인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창작의 맛을 잊지 못하여 직장을 내던지고 다시 귀환.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처럼 낮에는 생계를 위한 온갖 잡일에 밤에는 시나리오 쓰기라는 이중 생활을 이어가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직접 웹툰으로 만들 결심을 한 뒤, 그 끝에 세상에 내 놓은 것이 바로 이 '금요일'이라는 만화였다. 말하자면 창작인으로 다시 돌아온 그가 난산 끝에 출산한 첫 아이인 셈이다.

 작가 스스로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누군가의 정서나 철학에 작디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금요일'을 읽고나면 이 말만큼 이 작품을 제대로 정의해주는 것도 없다고 느껴진다. 그대로 이 '금요일'이란 만화는 읽는 이에게 그것이 정서이든 철학이든 분명 파문을 일으키는 책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쩌면 쓰나미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금요일'은 단편집이다. 모두 15개의 단편이 세 파트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각 파트의 이름은 '딜레마', '아이러니' 그리고 '카오스'다. 앞서 이 제목이 마치 우리 삶에 '불금'처럼 안식을 주는 '금요일 같은 것은 없다'라는 선언처럼 느껴진다고 했는데(이 단편집에 '금요일'이란 작품은 없다. 그러니까 '금요일'은 표제작이 아닌 단편집을 위해 별도로 붙여진 제목인 것이다.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세 파트의 제목 탓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삶에 있어서 지속적인 안정과 쉼을 얻기 힘든 이유가 삶의 본질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 '딜레마', '아이러니' 그리고 '카오스' 덕분이니까 말이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 딜레마와 아이러니 그리고 카오스는 타인과 미래가 내 예측되로 될 것이라는 믿음을 깨뜨리고 그건 동시에 작디 작은 내 한계에 대한 자각이기도 해서 모든 걸 근심과 불안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속살이 바깥에 노출되어 버린 갑각류가 조금만 접촉에도 기겁을 하듯이 한계의 통감으로 인한 나란 존재의 보잘것 없음의 자각은 작은 초식동물이 사자와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로 가득한 우리에 내던져진 것과도 같이 가득한 두려움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게 만든다. 바로 이 단편집 '금요일'에 실린 만화들은 그런 작은 존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을 '공포의 감각'으로 공통적으로 바닥에 깔고 있다. 첫 단편 '원룸'에서는 절대 원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인데 남들은 사회부적응자라 말할지 몰라도 그 자신만은 지극히 만족하며 무려 9년동안이나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유일하게 바깥으로 나가는 계기가 되는 담배를 사러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데 그 바깥에 오히려 자신의 원룸이 있는 걸 보게 된다. 즉 그는 더 이상 원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원룸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연재 당시의 웹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무시하고 말하자면 '원룸'이 이렇게 단편집의 가장 첫 작품이 된데는 까닭이 있다. 바로 이 '원룸'에 드리워져 있는 '갇힘'의 공포가 단편집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보편적인 공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룸'은 이 '금요일'이란 단편집이 어떤 성격의 단편집인지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제목에 '禁'이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감금할 때의 금자도 바로 이 금지된 '禁'을 쓰니깐.

 그렇게 '원룸'이 공간에 의한 감금이라면 뒤이은 '역행'은 시간에 의한 감금이다. 그 뒤이어 나오는 '도플갱어'는 자아에 의한 감금이고 계속되는 '알파'에서는 인류 진화의 모습이 감금된 상태에서 보여진다. 파트 1의 마지막 '퍼펙트 월드'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와의 계약으로 그 어떤 것이든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자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다가 결국 이르게 된 곳이 자신의 영혼을 파괴한, 한 마디로 심신상실의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또 정신병원에 갇혀서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단편집에서 감금은 공포의 감각으로, 이미지로 계속 이어진다.  파트 1의 '딜레마'는 그걸 주로 자기 내부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파트 2, '아이러니'에서는 그걸 좀 더 넓혀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룬다. 그렇게 첫 단편 '지아비'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장의 관념에 갇힌 한 슬픈 아버지의 초상을 보여주며 뒤이은 '박싱'은 상위 계급이 하위 계급을 마음껏 착취하기 위해 세상에 퍼뜨려놓은 거짓 '착함'의 관념에 갇혀버린 한 장애인의 초상을 나타낸다. 그렇게 가정에서 사회로 이야기는 확장된다. 이 '박싱(BOXING)'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한데, 싸우는 게 아니라 의식 자체를 박스로 포장해 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가지고 있는 조금을 포기하기 싫어서 현실에 아예 눈 감고 사는 이들은 어디서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니까. 

 그 뒤,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마마보이', '순혈' 파트의 마지막 작품인 '불면증' 역시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 스스로 얼마나 갇혀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에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갇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또 한 번의 배진수 작가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는 것을 보여준 '카르마'로 시작하는 파트 3, '카오스'는 또 달리 변주되어 이제는 그 갇혀진 시선이 가져올 수 밖에 없는 비극을 보여주는 다섯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감금된 삶에서 나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그 행동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모든 탈출을 위한 노력들이 결국엔 좌절로 종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단편집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리버스'가 개인적으로는 참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내용도 내용인데다가 하필이면 이 작품이 또 가장 마지막이라서 꼭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스스로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갇혀 있는 존재라고 선언하면서 끝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감금이 책 바깥으로까지 확장되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단편집 '금요일'은 이런 작품이다. 감금된 존재로서의 '인간' 보편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난, 그 감금된 상태 안에서는 그 어떤 탈출을 위한 노력도 무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인지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작가 스스로가 말했듯이 작화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쇄의 공포와 불안이 한껏 강조된 이 만화책에서 이 그림체는 못 그렸다기 보다는 주제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작게 분할된 사각의 화면도 작품이 추구하는 감금의 감각을 살리기에 효과적이었고 더구나 그 칸에 주로 인물이나 장면을 클로즈업 하여 실어서 감금의 효과를 더욱 높였다. 오래도록 시나리오 작가로 내공을 닦아서인지 문장도 좋았다. 사실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게 대부분인데 그나마 이야기가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모두 작가의 문장 덕분이라고 해도 좋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혹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조소나 불신 혹은 혐오로 읽혀질까 염려했다. 마치 당부라도 하듯 자신의 모든 작품이 사실은 블랙코미디이며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으로 읽히기 바란다고 적어 놓았다. 이 작품들을 보고 난 웃을 수 없었기에 블랙코미디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하지만 연민이라는 말에는 적어도 고개는 끄덕일 수 있을 듯 하다.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종종 한숨까지 내쉬면서 느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화에 흔히 그려진 작은 사각의 칸. 그게 이 만화를 읽으며 느낀 인간이란 존재의 크기였다. '참, 얼마나 인간이란 작은 존재인 것인지...' 그 작은 칸에서조차 탈출할 수 없는 게 바로 인간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제목대로 우리에게 있어 '金요일'이란 영원히 금지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딜레마'와 '아이러니' 그리고 '카오스'의 창살로 둘러싸인 가운데 안식의 금요일과는 영영 차단된 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힘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것들인 이상 이러한 '금지'는 받아들여야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비관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에겐 딜레마, 아이러니 그리고 카오스 보다 더 큰 한계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죽음'이다. 이는 영원한 종결이고 그 때문에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하거나 비관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죽음이 있다고 해서 내내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연애를 하거나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거나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죽음 때문에 예술이 포기되는 경우는 없다. 삶이 포기되는 경우가 없듯이. 오히려 그 유한함 때문에 우리는 문명을 만들고 예술을 하며 삶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보자면 한계라는 선은 넘지 못하게 하는 금지된 선이 아닌 오히려 뛰어넘기를 부추기는 유혹의 선이다. 절대적 한계일 수록 절대적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바로 인간이 걸어온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쓰다보니 이상한 쪽으로 글이 넘쳐 흘렀다. 연민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오히려 한계가 가진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쓰고 말았다. 뭔가 나도 모르는 이유로 내 더듬이가 이쪽에 예민해져 있던 탓일까? 아무튼 배진수 작가가 일으킨 파문의 여파고 글을 쓰는 지금이 하필이면 밤인지라 그에 취한 결과다. 종종 밤은 말술 같다. 날 이다지도 수다스럽게 하는 걸 보면. 어쨌든 마지막에서 계획에도 없이 샛길로 빠지고 말았는데 이 '금요일'이 내게 일으킨 파문의 문양은 다 말한 것 같다. 미진한 부분은 그 나름대로 이 책의 감상에 값하는 길일 것이다. 모자라고 부족하고 늘 나란 것의 보잘것 없음을 자각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하는 책이니까. 만화에 대해 참 별 말을 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만든다. 믿기지 않는다면 속는셈치고 한 번 들춰보라. 그리고 그 뒤에 자신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 보라. 어쩌면 기시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디서 이런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