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 좋은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23세에 옥스포드에서 철학 박사를 받고 바로 교수가 되었던 마크 롤렌즈가 늑대 브레닌과 함께 했던 세월을 회고한 이 책, '철학자와 늑대'가 그랬습니다. 그냥 '늑대'가 나오길래 선택했던 책이었는데(늑대는 제가 좋아하는 동물이거든요. 그래서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했던 영화 '늑대와 춤을'도 좋아하고 늑대가 때로 사람으로 변하는 애니메이션 '울프스 레인'도 정말 좋아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정말 좋은 책이더군요.

 

 

 이 책의 주인공들인 늑대 브레닌과 철학자 롤랜즈

 

 

 늑대를 키우는 게 제 꿈이기도 해서 부러워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늑대와의 생활을 통해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나 인상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말리와 나'라는 책과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한 신문의 컬럼니스트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개를 키우면서 겪었던 우여곡절을 그린 그 작품에서 지은이는 그 정신없고 통제안되는 개를 삶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얌전한 것 같다가도 잠깐만 한 눈을 팔면 어느새 소파며 침대를 물어서 다 뜯어버리는 개, 말리에게서 사람의 삶도 그와 같음을 진하게 느끼는 것이죠. 거기서 말리란 개는 그저 삶의 한 은유였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는 다릅니다. 여기서 브레닌은 늑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존재도, 인간이란 존재를 더 잘 알기 위한 존재도 아닙니다. 브레닌은 다만 늑대로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를 거부하는 타자로서 말입니다.

 

 

 

                                                                  늑대 브레닌의 자태

 

 

 인간적인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인간 롤랜즈에겐 거울이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가진 진실된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말이죠. 그 절대적 타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다보니 인간이 가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브레닌 앞에서 인간의 지성이란 홉스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하듯이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합의하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해서 타인을 속이고 계략에 빠뜨려서 패배시키기 위해 발달해 왔다는 것을 알게되고 또한 사랑이니 애정이니 희생이니 하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됩니다. 여우는 배우자가 죽으면 땅을 파헤쳐 거기다 묻고 늑대들은 동료가 사냥을 갔다오면 모두가 다 같이 배웅나와서 환영합니다. 시튼 동물기에는 사랑하는 배우자가 사냥으로 죽자 스스로 사냥꾼에 덫에 걸려 죽음을 맞는  늑대 로보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감정들 또한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롤랜즈는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라고 동물 보다 더 상위에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 또한 인간 존재와 동등하며 그들의 아픔 또한 인간이 겪는 아픔만큼이나 동등하다는 것을. 때문에 그는 앞으로 그 어떤 고통도 동물에게 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며 그것을 이론화한 '동물권'이라는 책까지 내게 됩니다. 이렇게 롤랜즈는 늑대 브레린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것이죠.

 

 얼마전에 롤랜즈가 그의 개인 포스트에 올린 아일랜드에서 책에도 나오는 개 나나와

 놀고 있는  브레닌의 모습. 롤랜즈는 이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철학자와 늑대'는 이런 책입니다. 늑대와 함께 했던 소소한 일상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고 보다 더 멀리 인간학적, 철학적, 사회적 논의로 발전시켜 나가는 책입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인간 중심에서 해왔던 그 모든 이론들을 다시 동물 중심에서 헤아려 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롤랜즈는 언제나 브레닌과의 일상과 보다 깊은 차원의 논의들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주의하고 있기 때문에 문체는 평이하고 틈틈이 끼어드는 롤랜즈 개인의 내면 고백까지 더해져서 진솔하며 늑대 브레닌이 보여주는 행동들이 귀엽고 재미있기 때문에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술술 읽힙니다. 그래서 늘 한 줄 미소를 머금으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우연히 만났습니다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이 책을 정말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동물을 좋아하신다면, 특히나 개나 늑대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철학자와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