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현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만 어떻게 하여 의학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는지에 대해선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학은 모든 학문이 샅샅이 개방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일반인들이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배타적 영역에 머물러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의학의 역사 또한 아직은 어둠의 장막으로 가려져 있다. 더구나 의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히포 크라테스가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어져 온 아주 오래된 역사인지라 문외한으로서는 일목요연하게 접근하기란 더우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의학의 역사를 좀 더 쉽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책을 기다리기 마련인데 마침 좋은 책이 이번에 도착했다. 바로 그 것이 뉴잉글랜드 의학잡지 선임기자로 있는 존 퀘이조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라는 책이다.

  

 

  의학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고 하니까  얼른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어져 온 의학의 방대한 역사가 떠오르면서 혹 그 역사만큼이나 분량이 방대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말이지만 거기에 대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겨우 375페이지로 보통 한 권의 책 분량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러면 또 얼른 다른 의문이 든다. '어떻게 그 정도의 분량으로 그 장대한 의학의 역사를 담아낼 수 있는지, 뭔가 압축기 같은 것으로 의학의 역사를 있는 힘껏 압축하기라도 한 게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으니 당연히 아니다. 존 퀘이조가 그러한 분량의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의학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되는 10가지를 특별히 선별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의학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여 특별히 선별한 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10가지 사건들은 이러하다.

 

 

 가장 먼저 의학이 창시되었던 순간이 히포 크라테스가 있고 의학이 처음으로 발생 후의 치료에서 발생 전의 예방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존 스노우의 콜레라 치료를 통해 그 중요성이 입증되어 이제는 의학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공중 위생이 자리잡아가던 순간이 있으며 처음으로 질병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파스퇴르에 의해서 발견된 보이지 않는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일어나는 것임이 밝혀지던 순간이 있으며 수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환자의 통증을 막는 방법에 대해 처음으로 윌리엄 토머스 모튼에 의해 '레테온'이라는 마취 가스가 발견되던 순간이 있으며 해부를 하지 않고도 몸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여 치료에 있어서 획기적인 도움을 주었던 엑스선이 뢴트겐에 의해 발견되고 상용화되는 순간이 있으며 세균의 의한 감염은 밝혀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감염되고 난 뒤 치료에만 급급했을 뿐 미리 막는 방법을 몰랐었는데 드디어 제너에 의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힘을 약화시켜 인간 스스로 먼저 항체를 생성토록 하여 예방이 가능하도록 한 백신이 발견되는 순간과  처음으로 곰팡이의 유용성을 알아보고 그를 통해 페니실린이라는 것을 만들어 항생제의 시대가 열리도록 한 플레밍의 순간이 있으며 드디어 인간의 형질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밝혀내었던 유전 법칙이 멘델에 의해 발견되는 순간이 있으며 광기라는 것이 신의 형벌이 아니라 그 역시도 의학이 다루어야 할 영역임이 인정되는, 그렇게 신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 역시도 진지한 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임을 널리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서양 중심 의학이 아닌 동양이나 다른 제 3 세계의 의학 역시도 서양 의학만큼이나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렇게 존 퀘이조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0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의학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를 위해 그가 독특하게 시도하는 한 가지 설명 방법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한 분야의 역사를 다룰 때 그것이 어떤 단계를 거쳐 발달해 갔는지 보다 쉽게 보여주기 위해서 특별히 세 개의 이정표를 세워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과 같은 의학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거쳐왔던, 물론 더러는 미숙하고 더러는 시행착오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가 있었던 과정들을 이정표로써 다룬다는 것이다. 존 퀘이조가 이렇게 특별히 이정표까지 마련하여 그 과정을 기술하는 것은 의학의 진보가 어느 한 천재만의 성과라기 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얻어낸 '집단적인 성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세상을 바꾼 의학의 기적은 한 인간의 빛나는 영감이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오로지 치료의 가능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해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던 모든 익명의 연구자 전체의 노력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학의 진보란 인류 전체의 진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존 퀘이조는 보다 넓은 시선으로 의학의 역사를, 그것도 부담없는 분량으로 더구나 쉽게 조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물론 이 책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의학 역사의 지식들을 상세히 알려준다는 의의도 있지만 더 나아가서 문명의 진보란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의 연속된 집합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려준다는 의의 역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읽을 가치가 있다.

 

  '역사의 연구'를 썼던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그 장대한 역사의 연구를 끝내면서 인류의 역사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라고 단적으로 정의한 바 있다. 사실 의학의 역사만큼 이러한 토인비의 정의가 잘 들어맞는 것도 또 없는 것 같다. 콜레라와 같은 질병들은 그야말로 인류에 대한 도전이었고 인류는 그 도전에 전체가 합심하여 응전함으로써 오늘까지 문명을 지속시켜왔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합심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1등만을 기억하듯 한 개인만 영웅시한다. 하지만 존 퀘이조의 책이 잘 보여주듯이 개인이란 그저 하나의 접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우연히 그 개인을 통하여 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름을 알린 그 한 명의 인물 보다는 그가 이름을 얻는게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그 이전의, 역사의 음지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했던 익명의 존재들을 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 깨달음이 내가 존 퀘이조의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콜레라는어떻게문명을구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