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현의 전작에서 느꼈던 것이지만 명지현 소설에 나오는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함에 있어 당당하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을 솔직하게 긍정할 줄 알며 그것을 실현함에 있어서도 그것이 설사 아무리 지금 사회의 도덕이나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런 그들이기에 삶은 단 한 번도 부정의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삶은 언제나 한바탕 신명나게 놀다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장날의 마당이며 그래서 그들의 생명은 푸른 바다 위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날치의, 하늘로부터의 환한 햇살마저 가득 받아 눈부신, 짙푸른 등만큼이나 싱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지속을 위한 더없이 질긴 생명력을 보고 싶다면 그 무엇보다 명지현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교군의 맛'은 그런 그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교군이란 가마꾼을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교군은 직업의 명칭이 아니라 공간의 이름이다. 소설의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주 무대가 바로 '교군'인 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교군은 하나의 왕국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단출한 하숙집이었고 그다음에는 고급 요릿집이었다가 지금은 회원제 게스트하우스가 되었다. (...) 마당이 넓은 고택인 교군은 해방 전부터 가마꾼들이 가마를 세워놓고 밥을 먹거나 낮잠을 자던, 이를 테면 버스 종점과 같은 공간이었다. (p.68)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명지현이 교군을 특별히 '종점과 같은 공간'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사실은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을 이 표현을 오랜 교군의 역사 사이에 슬쩍 삽화처럼 끼워 놓는다. 마치 삶의 종점으로서의 '교군'이라는 공간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그런데 이 '교군'이 가진 성격은 전작 '정크노트'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었던 '양귀비 농장'과 또 닮아있어 자못 흥미롭다. 거기서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양귀비 농장은 사실 전직 의사의 것으로 그 의사가 어떤 죽음을 계기로 낙향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삶의 종점과 같았다. '교군'과 '양귀비 농장'은 세상에서 내몰린 자들이 찾아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닮아있다. '정크노트'에서 '양귀비 농장'은 주인공이 지독한 가난으로 부터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교군' 역시 그렇다.  유복하지만 권태로웠던 교군의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미란이 결국 권력과 돈의 노리개가 되고 임신하는 바람에 그들로 부터 버려졌을 때 유일하게 깃들 수 있었던 장소는 '교군'이었다. 또한 그 때 낳은 딸 '김이'가 엄마 미란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죄를 남편이 뒤집어쓰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의탁할 수 있었던 곳도 바로 '교군'이었다. 그렇게 미란과 그의 딸 김이는 '정크노트'에서의 주인공과 같다. 그런 '교군'이다. 삶의 마지막 장소.

 

 대개의 경우, 삶의 마지막 장소는 음울하게 그려지기 마련이다. 만연된 절망, 그로인해 초주검이 된 존재들이 폐가에 널린 빨랫감처럼 아무도 걷어줄 이 없어 점점 쌓여만 가는 세월 속에 너덜너덜해져 가는 곳. 대부분 삶의 마지막 장소는 그런 식으로 묘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명지현은 다르다. 바로 여기에 명지현의 독특함이 있다. 그녀는 설령 그곳이 삶의 종점이라고 해도 그렇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아주 활기찬 삶의 공간으로 그린다. 거기엔 그 어떤 절망적인 존재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온전히 이루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들로 가득하다. 이는 교군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여왕이자 '교군의 맛'의 창조주, '이여사'에게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여사는 지배자답게 소설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걸 무엇보다 우선시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미란이 살해당했을 때 조차 미란의 죽음 보다는 그 장례를 준비하느라 놓쳐버린 참숭어로 만든 어란을 더 아쉬워한다. 떠나간 미란의 존재 보다 놓쳐버린 어란의 '그 쫀득쫀득하고 짭짤한 향미'를 더 애통해하는 것이다. 그녀는 아예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부 내 입으로 인해 열리고 닫힌다.(p. 288)

 

 이렇게 교군은 삶의 마지막 장소이지만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그 곳을 지배하는 '이여사 '가 대표하듯이 숨김없는 자기 욕망의 더없이 충실한 실현으로 넘쳐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기 욕망의 충실한 실현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교군의 맛'이다. 그러니까 제목의 '교군의 맛'은 '교군'이라는 공간 가득 대양(大洋)처럼 흐르고 있는 욕망의 적극적 실현 자체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교군의 맛'이란 '정크 보이'의 양귀비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교군으로 모인다. 손님도 오고 친지들도 온다. 그들은 불빛을 보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여름밤의 풀벌레들처럼 교군으로 오고 싶어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로지 그들의 식탐 때문에 교군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렇게 '식탐'은 '이여사'에게서도 보았듯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여 우리들이 가진 욕망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공자는 식욕과 성욕을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욕망으로 말한 바 있다. 공자의 말마따나 그러한 우리의 근본적 욕망이 되는 식욕으로 교군이 넘쳐난다는 것은 바로 교군이 그러한 욕망의 적극적인 실현의 장소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명지현은 교군의 맛을 특히나 '매운 것'으로 정의한다. 그것도 그냥 보통 매운 게 아니라 아주 매운...

 

 왜 명지현은 '교군의 맛'을 다른 맛도 많았을텐데 하필이면 매운 맛, 그것도 아주 매운 맛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우리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소설에 나타나는 매운 맛의 다음과 같은 묘사에 의해 나타난다.

 

 교군의 매운 맛은 그냥 매운 맛이 아니었다. 입으로는 그저 좀 맵다, 정도인데 점차 몸이 더워지면서 신경이 짜릿짜릿 곤두서고 몽롱해졌다. 영육이 분리되는 묘한 기분에 젖어 사람들은 자신의 껍질을 던져버리고 홀딱 발가벗었다. 맛에 도취되는 반응은 언제 어느 때나 각기 달랐다. 어떤 사람은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고, 어떤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허풍을 떨었고, 어떤 사람은 제가 간직한 비밀을 술술 털어놓으며 울었다. 처음 만난 남녀가 몸을 섞은 뒤로 너무 맵게 먹은 탓에 실수를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몸 깊숙한 곳에서 이는 불꽃을 어쩌지 못해 더 큰 불을 저질렀다는 말이었다.(p. 290)

 

 바로 여기서 드러나듯이 교군의 '매운 맛'은 사회가 사람들에게 입혀 놓은 규범이라는 옷을 벗기고 발가벗겨 자신들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어떤 외부적 제약도 정지시켜 드러낸 욕망을 순수하게 한껏 충족하게 만든다. 즉 교군의 매운 맛은 우리들 내면에 사회 규범으로 인해 억눌려 있던 리비도를 해방시키는 힘인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거기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달랐어도 매운 맛이 사람에게 했던 역할은 다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명지현 작가는 특별히 '매운 맛'을 고른 게 아닌가 싶다. 여타의 다른 맛들과는 달리 매운 맛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동일하게 느껴진다는 점과 다른 맛들보다 그 맛을 훨씬 압도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즉 모든 욕망이 예외없이 일률적으로 드러나고 실현된다는 점과 그 과정이 이성으로 조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압도적(그래서 발현과 충족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이라는 점으로 '교군'의 성격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특별히 '매운 맛'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욕망의 단적이고도 압도적 실현이 이루어지는 교군은 명지현 작가가 소설에서 내내 강조하듯이 삶의 마지막 장소다. 이는 '교군'이 소설에 드러나는 순서에서도 암시된다. '교군'은 미란이 돌로 맞아 죽고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엄마를 잃은 딸, 아내를 잃은 남편, 자식을 잃은 부모가 모여든 장소로써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일한 상실을 체험했고 그로인해 내몰렸다. 하지만 명지현은 '교군의 맛'을 형상화한 것에서도 보듯이 그런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욕망의 능동적 표출과 적극적 실현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반전된 분위기는 꽤나 독특하다. 그래서 바로 여기에 작가가 전하고픈 진심이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그 진심이란 무엇일까?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조차 우리들은 마지막이라고 해서 모든 끈을 놓지말고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자기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대로 삶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순수한 지속일 뿐이며 무릇 생명을 지닌 것들이란 그 마지막 걸음을 다 할때까지 남김없이 고유한 욕망으로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을 내내 지속하는 것이란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것. 절망하지 않는 것.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긍정하는 것. 명지현 작가는 삶의 마지막 장소에서 더욱 치열하게 매워지는 교군의 맛으로 바로 이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는 저 삶의 긍정, 자기 욕망의 충실성이 정말 작가의 진심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소설 마지막이 욕망의 실현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단연코 증명된다. 명지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그녀가 던진 진심의 여운을 남긴다.

 

 벗어도 몸이 뜨거웠다. 화로처럼 달아올라 외려 춥기까지 했다. 김이는 가지의 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후회는 없을까? 할 수 없다. 맵게 먹어서 그렇다. 맵게 먹으면 이렇게 된다. 이러려고 맵게 먹는다. 교군의 모든 음식이 독이라 했다. 독은 독이다. 활활 타는 이 불길을 더 큰 불로 꺼트리기 전에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북처럼 둥둥 울렸다. (p.366)    

 

 

  

 

 

 

 

교군의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