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가 만사를 제쳐두고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눈을 돌려서도 안 되는 우리가 제대로 알고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바로 지금 우리 시대의 아픔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아픔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적나라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시창!'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적나라한 진실이다.

 그리고 '현시창'은 '현실은 시궁창이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몸에 좋은 약은 맛이 쓴 법이듯, 사회의 진실한 모습 역시도 가장 아픈 곳에서 드러난다. 조르주 아감벤이 말했듯, 버려져 아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호모 사케르'적 존재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사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만방에 노출시키는 주체들인 것이다. 임지선은 그러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호모 사케르'들을 불러모은다. 전혀 주목받지 못했거나 혹은 단지 몇 줄의 기사로 잊어버렸던 존재들을 그 망각으로 부터 발굴해내는 것이다. 그 발굴의 현장은 대단히 넓다. 거긴 자신이 일하는 노동 현장으로 부터 배신당한 자들도 있고, 오로지 '경쟁! 경쟁!'만 외치는 사회 구조 때문에 강제적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자들도 있다. 또한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곳곳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받아야했던 자들도 있다. 늘 부단한 망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기록과 기억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임지선이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이 발굴의 기록들을 쓴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이 '현시창'은 일종의 이정표다. 이정표는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일단 누구다 다 볼 수 있게 하고 다음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준다. 그것이 바로 이정표다. '현시창'은 정확히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이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죽음, 눈을 돌려서는 안되는 아픔을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죽음과 아픔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게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시창'이 드러낸 이 청춘들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G20이니,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어쩌니, 한류니 하는 것들은 다 그 입을 다물게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죽음이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을 모아 자랑하는 국격에 어울리는 정도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조치만 있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제대후 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한 청년은 대형마트 냉방시설에서 일을 하다 안타깝게 질식사 했는데 일하던 공간에 환기시설만 제대로 되어 있었어도, 최소한 창문만이라도 열 수 있었어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에서 펄펄 끓는 용광로에 빠져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20대 청년은 허술한 쇳사슬이 아닌 보다 제대로 된 안전시설만 있었어도 그리 허망하게 죽지 않아도 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죽음은 절대 그들 탓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태하거나 부주의해서가 아니었다. 근로환경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는 미비한 안전 시설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G20'이니 '선진국'이니 떠들어대지만 사실은 아직도 여전히 후진적인 근로 환경이 그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현재의 진실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러워졌어도, 스마트 폰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만큼 첨단을 걸어도 사회의 진실은 여전히 후진적인 것이다. 이건 무엇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성희롱 피해자인데도 정작 가해자인 남성은 멀쩡하고 피해자인 여성만 불이익을 당하는 직장에서, 같은 콜센터 상담원이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욕설과 직장내에서 더 많은 타박과 구박을 받는 처지에서 우리는 전근대적 남성 가부장제의 모습이 그대로 오롯이 반복 재현되는 걸 목격하는 것이다. 즉 이들의 고통과 눈물은 우리 사회이 겉모습이 어떻게 바꼈든지간데 진실은 여전히 그로부터 별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진실의 확인을 통하여 우리는 이제 정말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즉 임지선의 '현시창'은 바로 그 나아갈 바를 위한 임상 사례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무신경과 무관심함으로 잃어버려던 죽음과 고통을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가 정말 어디에 신경을 쓰고 무엇을 이루려 노력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임지선의 '현시창'은 지금 현실이 가진 진실의 확인만은 아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일보 전진'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좋은 미래란 어디까지나 현실의 적나라한 진실을 깨달을 때에라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하다. 정말 우리가 기억하고 그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많은 아픔들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아픔들은 그 이유가 개인에게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모두 사회로 부터 가해진 것들이다. 요컨대 무작위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얼마든지 이 아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로 될 수 있는 아픔들이다. 그러니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며 그 치유의 노력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바로 우리가 그 다음의 주인공이 될 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현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