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프라미스라는 말을 들으니 비록 끝까지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도 있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오른다. 그것은 책을 사이에 둔 아들과의 거래였고, 바로 하루 30분만이라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Baruch Spinoza) 의 말을 가슴으로 받으며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던일, 어머니로서의 사랑하는 내 아이만큼은 책을 통해서라도 좀 더 넓고 광활하며 멋진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이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약속은 며칠이 못가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었다. 그 후로도 아들에게 책 읽어주기 라는 제목으로 이름을 달고 해마다 새해가 되면 나의 할 일이라는 수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규칙은 언제나 분명하고 확고했다. 매일 밤 예외 없이 자정 전에 최소 십 분씩(십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책을 읽을 것. 책은 그 당시 읽고 있는 것으로 정했지만 자정이 다가오는데 집 밖에 있는 경우라면 잡지가 됐건 야구 일정표가 됐건 상관없었다. p.24     초등학교 3학년 딸과 아빠와의 3218일라는 대장정의 독서마라톤이라는 말에 왜 갑자기 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일까?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어쩌면 아이는 아빠와 함께 책을 읽는 것으로 안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엄마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앨리스의 아버지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독서를 통한 교육시도는 열악한 환경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와 마음을 합하여 책을 사이에 둔 약속을 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3218일 이라는 긴 날 동안 약속이 잘 지켜졌다 함은 보이지 않는 힘겨운 과정도 있었을 것이란 걸 짐작해 본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여건이 안 될 경우에는 전화로라도 책을 읽어줄 정도였으니 이것은 노력도 보통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그것을 독서 마라톤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약속에 가까웠다. 서로에게 한 약속, 우리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킬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희망이 없던 시절에 맺은 희망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무엇보다 세상에게 한 약속이었다. 활자의 힘을 기억하고, 시간을 들여 그것을 사랑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약속이었다.” p.323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소중한 한 때를 놓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지금 이시간도 얼마나 많은가? 딸 바보를 자처하며 딸 사랑에 푹 빠진 아이 아빠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일, 그 어느 누구도 앨리스의 아빠처럼 오랜 기간 동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앨리스의 아빠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라 책과의 인연을 더 귀하게 여겼을까? 약속이란 나와 상대에게도 무척 소중하다. 목숨처럼 지켜져야 한다고 배웠던 약속이라는 의미가 상실되어 요즘은 종종 약속이 마치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데, 어떤 변명을 둘러댔던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의 사이에 오갔던 약속 중 혹시 지켜지지 못한 것은 없는지 생활모드가 급하게 점검 모드로 전환된다.   오늘날을 소통부재의 상황이 만연한 때라고도 한다. 아이들과 의사소통?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며 전혀 필요성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소통의 부재가 피부에 와 닿는 때가 있다. 우리집도 예외없이 먹통의 상황이다. 더 늦기전에 어떻게라도 가족들간의 소통을 시도해 보고 싶은데, 그러나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가 너무나 암담하다. 평소 아이와 함께 읽었던 책이라도 있었다면 그걸 빌미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 하루 10분 책읽어주기를 시작해 볼까? 그런데 아이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책을 선정하겠는데 통 감을 잡을 수 없으니 차라리 아이에게 솔직하게 고백해 볼까? 그동안 너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해 미안하다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으면 좋겠다고.   앨리스와 그녀의 아빠가 3218일 즉 9년여 동안 읽은 책들이 무려 L. 프랭크 바움의 오즈 시리즈부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스 디킨스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과 그리고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까지 이르는 방대한 책들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 감내해야 할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아이를 대신하여 아이의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부딪쳐오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독서 마라톤을 이어온 것이리라. 앨리스는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이다. 아빠와 딸이 나누는 독서의 대화는 무엇일지 귀기울여 본다. 마치 친구처럼 마음이 상통하고 이해해 줄 인생의 멋진 벗이 될 수도 있겠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도 없을 것같다.   오늘날 자녀를 놓고 진정한 교육이 무엇이며, 아이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우리 교육 현실을 둘러봐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다. 아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아이답게 이끄는 길이 무엇일까? 두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심사숙고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이란 목적이 있고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교육을 통해 얻는 효과도 극대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치 공부하는 로봇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 우리 교육풍토에 불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바람이 바로 아이스스로 사고하고 터득하며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날개 짓하며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교육은 아닐까 생각한다. 9년여 시간을 빠짐없이 책을 읽으며 대장정을 마친 앨리스와 앨리스의 아빠께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살아가면서 자주 잊게 되는 일, 그것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잊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치 거울처럼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