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겸손한 사제의 삶을 살겠습니다. 내란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수단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적인 삶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음악적인 재능, 의료봉사 등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봉헌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이제 미지의 세계로 갑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마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겠습니다. p.111

 

고 이태석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아프리카 톤즈로 향하기전 가톨릭 언론과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내용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이란 것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다시는 경험했던 그 고통을 피해가련만 고 이태석 신부는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기에 굳이 자신만이라도 버림받고 소외된 땅 아프리카에 가야 한다는 이유를 꼽았다. 사람에게 정한 운명이 한번 출생과 한번 죽음이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 이태석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한 편의 영화가 그리고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청빈하고 겸손한 봉사의 삶을 만나며 불현 듯 다짐했던 결심이 사제가 되어 불우한 이웃들을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멘토가 되었던 인물인 다미안 신부는 1800년대 후반 하와이 근처의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스스로 한센병 환자가 되어 생을 마감한 선교사였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삶의 모습과 생각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단 톤즈에 도착 한 첫날의 기록이 소개된 부분이 자꾸만 떠오른다. 사제이지만 의사였기에 사역지에서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할 장소인 진료소에서 지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그곳은 흙과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어 놓은 세 칸짜리 움막이었다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 그 곳에 들어가려고 해도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했으며 진료소 내부는 침대하나만 놓여 있는 곳이었다고. 명색이 병원인데 변변한 의료기구와 소독약조차도 없다. 뿐만인가. Vital check 즉 생명유지에 필요한 필수적인 검사를 할 수 있는 변변한 간호 인력도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지....... 고 이태석 신부가 일지에 남겼다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는 표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고 이태석 신부가 처음 목격했던 아프리카의 모습은 어땠는가? 전쟁과 굶주림, 질병으로 피폐해진 곳, 거리에 지나는 행인들이라고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으로 폭격을 당해 파괴된 건물들이 즐비한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곳이었다. 간단한 처치만 해도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간단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먹을 식량뿐만 아이나 마실 물도 없는 곳, 학교가 없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열악한 환경 속으로 파견을 자원을 한 것이다. 남들은 그 곳에 파견될까봐 마음이 무거웠을 텐데, 고통의 땅으로 스스로 걸어간 고 이태석 신부야말로 참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고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을 방문한 뒤에 예방 주사를 한 대 맞았다. 아프리카 첫 방문에서 말라리아를 심하게 앓아 선교의 꿈을 펼치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터라 다시는 아프리카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고 다시 아프리카를 찾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한 생애이다. 아프리카에 살았기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이 눈시울을 적신다. 충분히 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이 앞서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하는 고백이었다.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은 분명히 실천이다. 그럼에도 안으로 고이는 물처럼 마음에만 담아두고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은 사랑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자가 하느님의 참 제자라는 일깨움을 주는 책이다.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접하면서 그분의 놀라우신 헌신과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