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삽화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삽화를 그린 화가가 장 자크 상페인데, 그 이후로 그의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속 깊은 이성 친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속 깊은 이성 친구>에 대한 정보 없이 작가만 보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첫 장을 보면서 '역시 상페야!'하고 감탄했습니다. 다음 장을 넘기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 스토리나 삽화가 앞의 내용과 다르네. 옴니버스 형식인가'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장을 보면서 '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한 장, 한 장을 다시 천천히 음미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속 깊은 이성 친구>는 단상들입니다. 이성 간의 미묘한 감정들, 친구 사이의 우정, 이별에 따른 남녀의 차이 등 살다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짧막한 에피소드로 구성한 작품집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외국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에 의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속 깊은 이성 친구>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인간의 공통 언어이므로 글 속이든 또는 그림을 통해서는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의미가 가슴 한 편에 와 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공감이 가는 구절은 "실연의 아픔은 홀로 견뎌야 한다. 하지만 집 안에 틀어박힐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자기가 혼자라는 느낌을 더욱 뼈저리게 실감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p.70)"입니다. 그림 속에서 주인공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고, 화장실의 불빛이 거실 쪽으로 비춰지면서 테이블의 술병과 포장 음식 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거울 속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수척한 모습일테죠. 실연의 아픔을 표현하면서도 그림과 행간에는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깨달음 중에 아픔 속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뻬의 글과 그림이 전반적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이고 재치가 있음을 분명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의 그림은 남녀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강 위에 네 척의 나룻배가 선풍기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각 배의 끝에는 남자들이 제 각각 낚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쪽으로는 반쯤 벌거벗은 여자들이 타올을 두르고 모여서 수다를 떠는 듯한 모습입니다. 중년의 부부들의 모습 같습니다. 아마 남자들은 제 각각 취미에 빠져 있고 아내들에게는 관심이 없으며, 아내들 또한 남편들의 흉을 보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 어느 나라이든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상페의 글과 그림은 음미하면서 봐야 좋습니다. 바쁘게 책이 주는 메시지에만 초점을 둔다면 별로 읽을 만한 책이 아닐 것입니다. 시를 읽듯 행간 행간에, 또 그림이 주는 느낌을 따라 이야기를 만들어가듯 본다면 재미도 있고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