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정도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라면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아이들 중에서도 이 책을 안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헬린 옥슨버리는 그녀 자신이 워낙 유명한 그림책 작가이기도 하지만 존 버닝햄의 부인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읽어 준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른의 잣대로 보면 별 내용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책이다.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더 깊이 빠질 수 있고 그림책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표지를 넘기면 보통 간지가 나오는데 이 책은 간지도 없이 바로 그림이 나온다. 넓은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날고 있다. 눈을 감으면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갯바위. 새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풍경을 멋있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바위가 한쪽에 돌과 함께 늘어져 있다. 다음 장에는 제목이 나오면서 온 식구가 어딘가를 가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막내는 아빠가 무동을 태우고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간다. 엄마와 개는 맨 뒤에서 흐뭇하게 걸어가고...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이것만 보아도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흑백과 칼라 그림이 교차하며 보여지는데 동일한 어구가 반복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좋아하나 보다. 흑백 그림 부분은 어려움에 부딫치는 장면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가로 막고 있어도 다섯 식구는 씩씩하게 헤쳐 나간다. 모두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다음은 의성어나 의태어로만 되어 있고 그림은 칼라로 채색되어 있다. 게다가 글씨가 점점 커져서 느낌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기 때문에 시선이 자동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잘 보면 흑백 부분에서는 인물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데 다음 장인 칼라 그림에서는 반대로 인물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독자들은 글씨를 일단 보고 눈을 오른쪽 페이지로 돌려서 주인공들이 가고 있는 왼쪽으로 시선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결국 그림을 왼쪽과 오른쪽 모두 꼼꼼이 볼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이 얼마나 기묘한 장치인가. 아무것도 모르고 볼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히 넘겼는데 이렇게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니 그저 작가의 의도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동굴에서 곰을 보고 혼비백산 도망치는 장면은 마치 비디오 테이프의 되감기 버튼을 눌렀을 때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 때는 나도 모르게 빨리 읽어 준다. 아마도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이 한 화면에 모두 담겨 있어서 저절로 마음이 급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작가의 치밀한 계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온 식구가 곰을 피해 포근한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도감과 함께 안락함을 느낀다. 마지막에 쓸쓸히 걸어가는 곰의 뒷모습을 보면 좀 안 됐지만 말이다. 어쩌면 곰이 친구가 그리워서 쫓아 온 것은 아니었을까. 앗! 그러고보니 처음에 보았던 해변의 바위가 바로 곰이 있던 동굴이다. 와~~~, 이처럼 작가는 표지부터 세세히 이야기를 집어 넣어서 조그만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이 책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배려했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림책을 볼 때는 그냥 앞면 따로 뒷면 따로 보는 것 말고도 책을 쫙 펴서 앞표지와 뒤표지가 연결되도록 보면 또 다른 그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