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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EBS는 방송만큼이나 좋은 책을 내놓기로 유명하다.

자신들의 방송을 책으로 내놓다보니, 주제의 흥미와 교육성은 이미 검증되었다.

또, 책 곳곳에 방송 특유의 신속하고 간결함, 방송에 사용한 풍부한 자료들이 있다.

게다가 책은 방송시간이나 영상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아서 주제를 보다 심도 있게 다룰 수 있다.

이번의 '학교란 무엇인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EBS 교육대기획’ 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10부작이라는 방대한 방송분량과 알찬 내용으로

한국방송대상, 백상예술대상, 방통위 방송대상, 삼성언론상, 한국PD대상, EBS 방송대상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며, 일약 최고의 다큐로 떠올랐다.

그리고 EBS는 이 대단한 다큐멘터리를 2권의 책으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그 중 첫 번째 책인

'학교란 무엇인가 - 내 아이의 감성과 가능성을 살리는 토탈 교육 솔루션-'은

6부 <칭찬의 역효과>, 7부 <책읽기, 생각을 열다>,

8부 <0.1%의 비밀>, 9부 <사교육 분석보고서>,

10부 <노는 아이들의 기적, 서머힐> 등

후반부 5편의 방송내용을 5개의 챕터로 정리하였다.

전반부 5개의 방송분이 주로 학교 내부의,

혹은 선생님과 학생간의 interaction을 주된 주제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학교를 넘어(Beyond) 가정에서의,

그리고 부모와 아이 사이의 양육(교육) - 반응에 대하여 다루었다.

제작진은 이 책을 통해 아이의 양육 및 교육 과정에서 우리가 잘못 알았던 사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히 알지 못한 중요한 사실들,

(원칙적으로는) 어떤 가치가 옳거나 그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불안감 때문에 아이들에게 행하지 못한 일들 등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또, 무조건적인 칭찬의 부작용, 올바른 칭찬 방법,

학습에서의 독서의 중요성,

부모-자녀의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관계가 아이의 학습 욕구에 미치는 영향,

보조적 수단으로의 사교육 이용,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한 아이의 주체성 확립 등 다양한 화제를 제시하고,

교육학과 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실험을 통해 아이와 부모의 심리, 행동 반응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과 명료화를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을 준다.

5개의 챕터를 모두 다루고 싶지만, 지나치게 내용이 길어질 것 같으니,

이 중 가장 첫 챕터인 ‘칭찬’에 대한 내용을 예로 들어보자.

오래전부터 칭찬은 교육과 양육 과정의 '명약'으로 여겨졌다.

관습적으로는 물론, 정신의학적으로도 칭찬은

아이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여 자기 만족감을 높이고,

행위에 대한 더 큰 동기부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칭찬은 긍정의 힘을 발휘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상승효과를 유발하여 결과적으로 양육과 교육의 효과를 크게 높이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대체로 칭찬에 인색한 부모 밑에서 양육과 교육을 받아왔다.

'내 자식에게는 그러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생각

–일종의 반동형성- 은 TV등

매체를 통해 소개된 서구 선진국의 ‘칭찬’ 하는 교육의 모습을 통해 보다 확고해졌고,

자녀들에게 칭찬을 하는 부모를 이상적인 부모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 책은 '칭찬의 역효과'를 조명한다.

올바르지 않은 칭찬은 아이가

'스스로 그 것을 즐기고 싶은' 내재적 동기가 아닌,

일종의 ‘심리적 보상’으로 작용하여 외부적 동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은 칭찬이 통제이자 거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시도 때도 없이 주어진 공허한 칭찬은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캐럴 드웩의 3단계 칭찬 실험 역시 흥미로운데,

드웩 교수의 실험 결과, 똑같이 칭찬을 받아도 '노력' 에 대해 칭찬을 받은 그룹과

'지능'에 대한 칭찬을 받은 그룹의 수행 능력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드웩 교수는 '지능'을 칭찬한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고,

이로 인해 학습의욕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흔히 우리나라 부모들은 '100점 맞았으니 참 잘했다' 라는 결과에 대한 평가나

'이렇게 열심히 하면 조만간 100점 맞을거야, 잘하고 있어'라는 기대감의 반영을 내포한 칭찬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원래 넌 똑똑하니까 잘할거야'라는 의례적인 칭찬이나,

'그래도 잘했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거야'라는,

자칫하면 잘못된 행동도 인정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칭찬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칭찬들은 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즉, 자녀들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부담과 역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녀뿐 아니라,

대부분의 타인,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이러한 형식의 칭찬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필자 역시 진료실에서 이러한 칭찬을 많이 하였고,

수많은 선후배 동료의사들 역시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조차도 올바르지 않은 칭찬을 사용할 정도로

올바른 칭찬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잘못된 칭찬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저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답안지를 놓아두고 자리를 비우는 ‘거짓말 실험’과 ‘영어 단어 실험’으로 재능칭찬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칭찬의 역효과 실험’에서는 오히려 (잘못된) 칭찬으로 인해 도전 의욕이 꺾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행동과학의 token 보상법과 유사한 '칭찬스티커'는 아이에게 과정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어머니나 선생님에게 결과를 보여주기 급급하게 만든다.

‘야채주스 먹기 실험’은 칭찬이 사라졌을 때 의욕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잘못된 칭찬이 의욕저하는 물론, 과정의 즐거움을 빼앗고,

보여주기 식 결과에만 집중하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유발했다.

과연 이것이 한 개인의 학습영역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이런 식의 칭찬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에 ‘빨리빨리’ 문화와 ‘모로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결과지상주의가 만연한 것 아닐까?

요즈음 한국사회가 겪는 세계 제1의 자살률이라는 결과는 이러한 문화 때문은 아닐까?

(이에 대해 언급하자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이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실험은 부모를 대상으로 한 ‘칭찬차 실험’이다.

부모가 서로에게 평소 자신들이 아이에게 하는 칭찬을 한 뒤,

느낌을 말해보도록 하는 실험이다.

그 결과, 그들이 주고받은 칭찬은 위에서 언급한 '공허한 칭찬' 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부모 스스로도 서로에게 칭찬을 한 뒤 기쁨보다는 오히려 부담감을 느꼈다.

이는 부모들의 칭찬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이해도를 보여준다.

문제점의 제시와 실험을 통한 상황을 분석에 그쳤다면,

이 책은 여느 양육 책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들은 한 발 더 나아가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즉, 실험결과로 관찰된 사실과 전문가들의 해석을 종합하여,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긍정적인 집안분위기 형성 및 따뜻한 가족관계의 형성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다만, 저자들은 원론적인 대안에 그치지 않고,

각 챕터 끝에 있는 Bonus tip을 통해 자신들의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시준다.

예를 들어, 칭찬에 대한 챕터에서는

'현명한 칭찬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상황별 칭찬 대화'를 제시하고,

간단한 상황설명 및 예시도 첨부한다.

전반적으로 잘 짜여지고, 논리와 과학성을 겸비한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다.

비록 서평에서는 1개만 언급하였지만, 5개의 챕터 모두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동시에 우리에게 올바른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세월호 참사 때

명령을 들은 아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실종되었고,

방송에 따르지 않고 갑판으로 나와있던 아이들은 살아남았다.

이 결과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의 문제점을 질타하였지만,

나는 우리네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을 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