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미술에 대한 스스로의 무식함에 대한 해결책 내지는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2001년 유럽 여행 때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의 엄청난 전시물(대부분이 미술품, 그 중에서도 회화가 많았다.)에 질려버렸던 것일까? 

그 후로 10년 동안 해외를 나가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가지 않았다. 

물론, 국내에서도 미술전 등은 나에게 큰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공간을 헤매며 

후회하고 다리 아파하는 일이 반복되자, 무의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1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고 나서 미술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특히, 테이트 모던의 현대미술품들은 무엇인가 형용하기 어려운 자극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어떻게, 왜 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이후 뉴욕여행에서 MOMA, MET 등을 방문하여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나는 이 때까지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미술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KBS에서 나온 '미술'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평소 방송사에서 발간한 책의 퀄리티에 신뢰감을 갖고 있던 나는 인터파크도서를 통해 바로 전자책을 구입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구입의도와 맞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미술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고찰보다는 미술과 시대와의 관계, 특히 권력, 경제력과의 관계에 따라 보이는 미술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 자체가 주목할만한 미술사이며, 어떠한 분야이던지 그 분야의 역사를 이해하여야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점은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나의 구입의도와는 달랐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미술을 책으로 공부하려' 고 한 나의 실수랄까.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는 고갱전 티켓을 구입했다.

책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루어진 '서양'미술사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에서는 기존과는 달리 시대적으로 예술의 수도가 되었던 도시들을 중심으로 미술의 진화와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고 언급하였지만, 글쎄..무슨 차이가 있을까?

시간이건 장소이건 크게 다름은 없어보인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인류 최고의 그림 작품으로 불리는 '모나리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의 회화와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이루어진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피렌체, 제노바, 베네치아), 종교적인 절대권력을 뽐내거나 (로마), 군사적으로 강성한 (밀라노, 베네치아) 도시들이었다. 

즉, 우수한 경제력, 강한 정치 (혹은 종교) 권력을 지닌 곳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공간에 따라 미술사를 소개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에 따른 미술사 소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게다가 이 챕터에서도 미술사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르네상스시대의 권력 구조 (메디치가의 독재, 사보나롤라의 종교독재, 교황권의 최고조 등)에 따라 미술사의 변화를 설명한다. 마치 미술이 정치, 경제의 종속처럼 느껴진다.

이는 다음 챕터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의 대혁명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파리는 근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오늘날도 갖고 있는 '예술의 도시' 타이틀을 향유하였다.

이 시기에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한 피카소, 마네, 모네 등을 소개하는데, 이는 인상파,입체파의 등장과 연결된다. 

장소의 변화에 따른 소개라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시대의 변화 역시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소개이다.

 

챕터 3의 뉴욕 역시 20세기 최강 권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실질적 수도이자,제1의 도시가 팝아트를 비롯한 새로운 사조의 주인공이 된 모습을 묘사한다. 

이 역시 정치력, 자본력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술사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챕터 4의 런던은 다소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 쇠락하는 제국은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하였고, 그 결실을 거두어 새로운 사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챕터를 보면서 예술 역시 투자의 결과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씁쓸하지만..

 

마지막 챕터는 떠오르는 대국이자 이미 G2 중 하나인 중국 현대 미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베이징의 정치적 특수성으로 인해 중국미술과 여러 아시아 미술의 서양에 대한 창구가 되고 있는 홍콩 아트 페어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한 점은 예술, 특히 미술은 이제 자본과는 뗄려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구나 하는 점이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최소한 이 책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루어진 것이다.다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주문자의 경제력과 권력에 따라 미술이 이동하였다면, 근대부터는 아트딜러나 중개상의 힘이 커졌으며, 그들의 힘과 자본, 인맥에 의해 미술 작품에 대한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현대에는 미술 작품이 아예 투자 대상 (미술 펀드나 경매장의 존재)이거나 심지어 세금을 내지 않아 부유층의 재산 증식 및 상속의 도구로 악용되기까지 이르렀다. 

씁쓸한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미술에 대해 '책을 통해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진 것 같다. 

물론,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림들에 대한 배경지식은 중요하다.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만큼이나 스스로의 판단, 주관 역시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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