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여행기의 최고봉이다. 

책 자체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문화유산을 통해 연상한 역사적 사실들을 작금의 현실에 적용하여 독자들에게 날리는 촌철살인의 직설화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나,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과 이야기가 책을 통해서 쉽게 연상되기도 한다.

특히, 남도 답사 1번지라 일컫는 해남, 강진 지역을 다룬 1권은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이고, 남북한의 화해,협력 분위기에서 저자가 북한을 직접 방문, 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제주도가 국내 관광객들은 물론, 일본, 중국인에게 유명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자 7권 ‘돌하루방 어디감수광’을 통해 제주도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에게 제주도의 숨겨진 명소 혹은 제주도만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명소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의 수많은 명소를 답사기를 펴내는 일도 마치지 못한 그가 왜 갑자기 일본에 관심을 갖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출판하였는가?

그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서문에 있다. 

저자는 한일 양국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역사왜곡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개탄하고, 역사에서의 이성을 호소하는 다른 저서들 (필자가 일전에 읽은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을 언급한다. 

그리고 저자는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컴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는 명쾌한 결론을 내놓는다. 

그는 컴플렉스의 색안경을 벗어내고 양국의 선린우호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일본은 임나일본부설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왜곡에 대해 사과하고, 우리 역시 지나친 반작용으로 일본문화에 대한 무시, 특히 '일본 고대문화는 죄다 우리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 일본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어찌보면 아픈 근현대사에서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민족의 ‘민족적 합리화’일 수도 있겠다.

저자의 이성적인 이야기에 양국의 국수주의자, 단세포적으로 일본을 무조건 싫다고 하는 이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점은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만든 미국문화는 영국의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미국의 문화로 인정 받은 것을 예로 들며, 불과 200여년 된 미국문화도 이러한데, 2000년 가까이 되는 일본문화 역시 존중받을 만함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찬성이다. 

작년에 홋카이도를 다녀왔을 때는 몰랐지만 올해 3박4일간의 짧은 오사카-교토 여행 때 내가 느꼈던 것도 일본이 우리나라, 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각지의 지명이나 축제, 신사에 봉헌된 신, 건축 양식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이는 엄연한 일본식으로 변형된 일본문화인 것이다. 

다만, 강점기와 분단 등을 거치며 잃어버린 우리나라의 옛 문화 (축제, 건축양식, 불화 등)유산 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 상당수 있다. 

이를 통해 일본 속에 살아있는 우리문화를 배우고, 재구성하는 동시에 일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우리가 더욱 발전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길이 아닐까.

 

저자의 일본문화유산답사기의 시작은 바로 큐슈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일본의 고대 문명인 야마토, 아스카 문화는 백제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백제, 가야, 신라와 가까운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또, 임진왜란 때는 조선침략의 전진기지였고, 수많은 조선 도공들이 끌려온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후쿠오카에 쇼핑과 맛집을 찾아가던지..나카사키에 짬뽕과 카스테라를 먹으러 가던지, 유후인/벳푸에서 온천욕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아, 프로야구 구단들이 스프링캠프나 마무리 캠프로 이 곳 큐슈의 가고시마나 미야자키에서 훈련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북큐슈와 남큐수로 섬을 크게 나누고, 주요 여행지에 혼재된 문화유산들을 방문하며 이와 관련된 역사적인 이야기를 설명한다. 

제주 편에서도 그랬듯이 저자는 자신이 직접 이끌고 가는 답사팀의 일정에 따라 책의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래서 독자는 마치 자신이 그 팀의 한 명이 된 기분으로 답사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책의 사진을 통해 문화유산을 가상하고, 저자와 다른 전문가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조금 더 현장감을 느끼고, 집중하게 한다.

저자와 답사팀의 여행은 북큐슈의 ‘요시노가리’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의 거대한 청동기 유적지인 이 곳은 출토된 유물들의 한반도와의 유사성으로 일본학자들에게도 최소한 일본의 고대문명이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들의 강한 영향을 받음을 인정하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인이 기분나빠할 것도, 한국인이 우쭐할 것도 아니며 마치 오늘날의 영국인들과 미국인이 서로 다른 것 같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렇듯 저자는 하나하나의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마다 그 문화유산 자체는 물론, 이와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고찰하면서 궁극적으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바람직한 한일관계 형성 등에 대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폐성이 된 ‘히젠 나고야 성’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정벌을 준비하던 일본의 현황,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발자취가 남은 아리타, 아마리. 

그들의 기술로 재탄생한 일본식 분청사기, 가라쓰야키의 옛 가마터, 백제 무령왕의 탄생지로 전하는 가카라시마, 백제 멸망 이후, 백제인들이 나당연합군의 침범을 막기 위해 백제식으로 쌓은 수성, 나가사키의 원폭키념관,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옛 관아터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물론 일본의 수백만 수험생이 방문한다는 텐만궁 등등.

특히 백제인들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부흥운동까지 실패한 후,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여 큐슈 곳곳에 백제식 성을 쌓아다는 이야기나 우리에게는 끌려간 도공들이지만, 역설적으로 다기, 도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일본 귀족들의 태도로, 오히려 조선에서보다 대접받으며 일본에 뿌리 내린 도공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느껴지는 씁쓸함..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들을 ‘공돌’이라고 천시한 우리나라 양반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당하여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양반들의 무능 때문에 끌려간 일본에서 오히려 재능을 인정받고, 그 재능을 가문대대로 이어가 성공을 이룬 그들을 누가 감히 비난한단 말인가.

국력이 약하고, 위정자가 무능하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시련이다.

일본으로 끌려온 도공들의 모습에 최근 우리나라 의사들의 상황이 겹친다. 

초,중,고 때 부모의 등쌀도 있지만, 어쨌든 놀 것 다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에 진학하고, 예과 2년을 제외하고 매주 시험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4년간의 본과생활, 90% 이상의 합격률이지만, 워낙 엘리트들이 모여보는 시험이라 더욱 부담되는 국가고시, 1년간의 노예같은 인턴생활, 4년간의 여유 없는 전공의 생활...그 후 남자는 3년 3개월이라는 긴 기간의 군대생활..그리고 펠로우...

그렇게 수련을 쌓아, 전문의로서 세계가 인정하는 의료기술을 습득하였는데, 위정자들은 그들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재능을 옭아매고, 그들의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더 쥐어짠다.

조선양반들의 과거 도공들을 쥐어짰던 것과 같이..... 조선시대의 천대받던 도공들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사’계급으로 인정받고 가문을 이어간 것 같이, 의사들도 정녕 그렇게 해야하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우리가 흔히 임진왜란 때 도공들이 납치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도자기 기술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납치된 도공들은 주로 삼남지방의 도공들이고, 경기나 북부지역의 도공들, 가마는 건재했다. 

하지만, 그 후 도기의 주 수요층인 위정자들의 도공들에 대한 투자 및 대접 부족으로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점차 쇠퇴하여 오늘날에는 일본에 한참 뒤지게 된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에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창조경제를 외칠 것이 아니라, 독일처럼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우만이 자연스럽게 창조경제의 대두 &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남큐슈는 분량은 작지만,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 박평의와 심당길이 이룩한 업적, 그들이 일본 사회에 적응한 이야기, 미야자키의 남향촌에 백제후손들이 남긴 시와스마쓰리 축제, 가고시마의 일본 메이지 유신들의 흔적. 

특히 근대화의 상징이 된 상고집성관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책은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디자인 등 여러모로 세련되어진 것 같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올랐지만....일단 유물이나 유적지의 컬러 사진은 확실히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또, 책의 맨 뒷부분에 배치한 큐슈 답사 일정과 지도 역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 책을 따라 답사여행을 떠날 독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아울러 뒷부분에 ‘일본의 풍토와 고대사 이야기’를 부록으로 20여 페이지를 할애한 것도 참 좋은 의도라 생각한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지녀야 본문에서 작가가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딱 2가지이다. 

첫째 높은 가격. 

둘째,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은 점. 

자고로 답사기는 여행자들이 들고 다닐만 해야 한다. 핸드북도 좋지만, 최근 스마트폰, 특히 태블랫의 보급으로 전자책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작가가 쓴 이런 훌륭한 책들이 빨리 전자책으로 발매되어 여행을 갈 때 쉽게 갖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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