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 의 선풍적인 인기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은 물론 , 가깝고도 먼 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위치에 올랐다 . 

이후 ' 해변의 카프카 ' ‘1Q84’ 등 그가 발표한 소설들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최근에 발매된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는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와 함께 올 여름의 출판계를 양분하기도 했다 .

이토록 유명한 소설가인 그가 여행책을 , 그 것도 3 권이나 썼다는 것을 꽤 나중에야 알았다 . 

' 하루키의 여행법 ', ' 먼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 '등 3 권이나 말이다 .

 

비틀즈가 걸었던 에비로드가 리버풀이 아닌 런던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나는 깜짝 놀랐고 , 동시에 일본 소설계의 거장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책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 

게다가 인터넷으로 목차를 보니 그가 방문한 여행지 중 몇몇은 나 역시도 방문한 곳들이었다 . 로마 , 피렌체 , 오스트리아 ... 등 물론 그와 나의 여행지가100 퍼센트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 어쨌든 그가 바라본 여행지의 모습 , 그가 느낀 것 , 그가 생각한 것이 궁금했다 .

 

유명한 작가인 그의 시각과 생각을 엿보고 싶었고 , 무엇보다 같은 여행지를 보고 나와 그의 시각을 비교해보고 싶은 유치한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 

마치 ,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소변을 볼 때 아버지의 성기를 힐끗힐끗 엿보는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꽤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 이 중 2 권을 구입했다 . 

남은 1 권 역시 구입 예정이다 .

‘ 먼북소리 ’ 는 저자가 37 세 때부터 마흔까지 , 즉 1986 년 10 월경부터1989 년까지 이탈리아 , 그리스 , 런던 등에서 지낸 3 년여의 시간을 일기처럼 쓴 글이다 . 저자의 말을 빌자면 ' 친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 ' 으로 쓴 글인데 ,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많이 다르다 .

저자 역시 1986 년 당시 ( 우리나라는 여행 자유화가 되기 이전 ) 이미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이 해외에 나가 여행을 즐기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 

그래서 저자는 무조건 해외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출판하는 것은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

그래서일까 ? 저자는 여행기에 흔히 포함되는 문화유산 소개를 비롯한 계몽적인 요소 , 유익한 비교문화론 등을 배제한다 . 

저자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 게으르지 않기 위해 혹은 시쳇말로 손이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 지속적으로 글을 쓴 것이고 , 그가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 것도 뭔가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을 저자가 자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 혹은 대단치 않게 여기는 ) 유럽에서 지냈기 때문에 오히려 여행지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 

너무나 단순할 정도로 사건이 없으니 , 주변의 사소한 일들과 환경에 눈을 돌렸다고나 할까 ?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글이 저자가 의미없이 끄적거린 글은 아니다 . 

저자는 이 글들을 쓰던 기간에 많은 단편이나 에세이 , 번역 작업은 물론 , 대표작인 저 유명한 ' 상실의 시대 ' 를 탈고하였다 . 

저자를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만들어준 위대한 소설을 쓰던 무렵의 글들이기 때문에 이 ' 먼북소리 ' 역시 단순히 건조한 해외 생활 이야기가 아닌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뭔가 허무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성 , 그가 머문 곳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엿보인다 .

저자는 9 페이지의 긴 머릿말에서 단 2 문장만 강조를 하는데 , 그 중 하나는여행을 떠난 이유였다 . 사실 궁금하기도 한 것이 , 왜 일본에서 알아주는 작가인 그가 굳이 유럽으로 , 그 것도 3 년이 넘는 기간동안 나가서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많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면 , 3 년 동안 세계일주를 했어도 될 것이고 , 직장인도 아닌 작가이기 때문에 눈치보고 휴가를 쓸 필요도 없이 일본에 살면서 잠깐씩 다녀왔어도 될 텐데 말이다 . 

그가 비행기 표 값이 아까워서 그리하였을리는 만무하고 말이다 .

어쨌든 저자는 이러한 필자의 우문에 한 마디로 답한다 . 

'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 라고 ...

그렇다 . 여행을 떠나는데 , 무슨 많은 이유가 필요하고 , 명분이 필요하단 말인가 . 이게 뭐 왕권교체하는 일도 아니고 , 스스로가 땡기면 가는 것이 정답인데 말이다 .

간혹 여행카페 게시판에 ' 여행을 가도 맞는 것일까요 ? 제가 옳은 걸까요 ? 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 라고 묻는 질문들이 있는데 , 필자는 평소 이 질문자들을 매우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 

아니 , 자신이 원하면 떠나는 것이 여행이지 , 왜 그 것을 굳이 이유를 찾아 자신과 주변인에게 합리화를 하려 하는지 ... 답답하기만 했다 .

저자 역시 자신의 이유에 대해 '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이었다 ' 라고 평한다 . 

동시에 '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 ~( 중략 )~ 아주 가냘프게 ,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라고 말했다 . 

그리고 그 것이 여행을 떠날 충분한 이유라고 자평한다 .

개인적으로는 계획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 충동적으로 떠나는 여행 또한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것이다 .

게다가 아무리 계획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일지라도 처음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발생하는 그 순간은 충동적이고 , 감성적인 상태이다 .

 

영화에서 뉴욕의 멋진 스카이라인을 보고 , 뉴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지, TV 프로그램에서 본 마터호른이 멋져 보인다던지 , 다른 사람의 여행 블로그에서 멋진 앙코르 와트 사진을 보고 직접 보고 싶다든지 , 비키니를 입은 아름다운 처녀가 등장하는 광고를 보고 필리핀 해변으로 가고 싶다든지 ...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머릿말이라도 들려주고 싶다 .

책 자체는 솔직히 아주 재미있는 편은 아니다 .

일단 배경이 80 년대 후반의 유럽이다 . 지금으로부터 거의 30 년 전 이야기이며 , ' 과거에는 그랬지만 , 지금은 많이 좋아진 ' 모습들이 많아서 아주 와닿는 편은 아니다 . 

물론 , 내가 하루키처럼 그 곳에 살아본 것이 아니라 여행자였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찌되었건 그 당시의 이야기는 딱히 재미있지는 않다 . '아 그래 ? 그런게 있었군 ?' 정도랄까 ?

그리고 머릿말에서도 말하였듯이 그는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의 소개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이탈리아 , 그리스 섬들 , 런던 , 오스트리아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준다 . 아니 , 애초에 그리 문화유산을 설명하려는 애를 쓰지 않는다 . 

로마에서 포로로마노나 , 콜로세움 , 런던에서 버킹엄궁전이나 빅벤 등을 보았다는 묘사조차 없다 . 

화려한 수사와 깊은 배경지식으로 자신이 경험한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의 묘사에 집중하는 여느 여행책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 

아니 오히려 약간의 권태스럽다고 할까 ? 무기력하다고 할까 ? 그런 분위기도 난다 . 시칠리아에서는 심하게 짜증도 부리는 느낌이다 . 

그는 음식 외의 시칠리아의 사람과 환경에 대해서는 짜증과 냉소를 금치 못한다. ( 특히 2 차대전 이탈리아 군의 행태를 통해 이탈리아인들을 비꼬기도 한다.)

 

 

그리스의 섬들에서 지낸 시간과 이탈리아 자동차를 몰고 토스카나 지방과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겪은 일들 , 그리스인 / 이탈리아인들과의 상호작용 , 이를 통해 저자 나름대로 바라보고 판단한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대한 정의 ... 등등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 솔직히 요즈음 나오는 여행책들처럼 흥미롭지는 않다 . 

다만 , 군데군데 저자의 시각과 사고를 엿보는 재미는 있다 . 아 ~ 하루키는 이렇게 해석을 하는구나 .. 라는 ...

어찌보면 여행책으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 낭만이 부족한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가 3 년여간의 해외생활을 청산하고 , 일본으로 돌아와 느낀 낯설음이 인상적이다 . 

저자가 돌아온 1989 년 가을은 일본으로서도 버블경제의 말기이자 잃어버린 10년의 시작기였다 . 

버블경제 말기의 일본을 , 저자는 ' 거대한 수탈기계 ' 로 인식한다 . 모든 것을 씹고 배설물로 내뱉는 거대한 흡수장치이며 , 이는 빅브러더로의 매스 미디어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 

아무래도 인간적이라면 인간적인 이탈리아 , 그리스의 생활을 거치고 온 저자는 일본 내에서만 지낸 일본인들보다 그 부분은 더 여실히 느꼈으리라 .

저자는 ' 금박을 두른 가짜 계급사회 ' 가 현재 (1989 년 당시 ) 의 일본이 추구하는 모습으로 바라본다 .

 

아마 IMF 전의 우리나라도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 

우리나라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일본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니 ...

지금도 그가 본 모습처럼 우리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결론적으로 이 책은 솔직히 조금 지루하고 , 양 많은 책이다 . 

때때로 풍자적이고 , 빈정거림 혹은 비꼬는 하루키의 표현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본인 위주의 글이고 , 현실적인 묘사에 치중하여 , 여행책으로는 좋지 않다 . 

다만 , 하루키의 팬이라면 , 그리고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하루키는 어떻게 자신의 (3 년간의 긴 ) 여행을 표현했을까 ? 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 이 책을 통해 그런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