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여행- 박종호의 이탈리아 여행기

 

저자는 현재 정신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현역(?)의사이다. 

그런데 그는 남들과 다른 특이한 경력이 있다. 

일단, 그는 클래식 음악 및 오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오페라 평론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의 클래식 음반 전문점인 풍월당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의사로서의 모습보다는 음악 애호가, 혹은 비평가로서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2권'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불멸의 오페라 1,2권',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그런 그가 ‘황홀한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우리에게 선보였다. 

황홀한 여행이란 어떤 여행일까? 

어디를 여행하였기에 저자는 ‘황홀하다’는 표현을 한 것일까?

 

그가 ‘황홀함’을 느끼며 여행한 곳은 바로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 음악애호가이자 오페라 비평가인 그는 이미 2008년 당시 15년 동안 무려 20여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을 경험한 전문가급 아마추어였다. 

그리고 괴테도, 찰스 디킨스도, 마크 트웨인도 이탈리아에서의 추억과 경험을 책으로 남겼듯이, 저자 역시 이 위대한 나라에서 받은 감동을 그냥 덮어두지 못하였기에 책을 남겼으리라. 

게다가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에 깊은 관심을 지닌 저자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탈리아 방문을 통한 많은 경험, 자신의 시각과 생각, 자신이 보고 온 이탈리아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사람마다 취향과 관심사가 다른 것처럼 저자의 눈으로 보고 글로 전달해준 이탈리아는 음악, 그리고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물론, 그 외에도 이탈리아의 문화유산, 음식, 자연경관, 건축, 그리고 이탈리아 인에 대한 저자의 묘사 역시 빼놓을 수 없으나, 확실히 음악과 오페라의 비중이 다른 것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임을 정신과 의사인 그가 직접 증명하는 것 같다.

 

이 여행기에서 저자는 역시나 정신과 의사가 아닌, 오페라 비평가이자 클래식 애호가였다. 

개인적으로 같은 정신과 의사로서, 그리고 나 역시도 선호하여 마지않는 이탈리아라는 멋진 나라를 그가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어떻게 보고, 묘사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로서의 시각과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그의 여행기에 조금은 실망을 했다.

 

저자의 여행은 이탈리아의 북동쪽 끝...베네치아에서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베네치아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산마르코 광장이나 두칼레 궁전,아카데미아 미술관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떠올리며, 베네치아의 으슨하고 좁은 골목길을 연상하고, 데이비드 린 감독의 '여정'을 통해 화려한 베네치아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는 한 때 화려한 치장으로 부의 상징이었던 곤돌라를 바라보며, 오페라의 '뱃노래'를 떠올린다. 

카페 플로리안 등을 비롯한 베네치아의 유명한 카페들의 연주자들을 통해 홀로 재미있는 상상을 즐기고, 여행객들이 자주 가는 무라노 섬, 부라노 섬, 토르첼로 섬, 리도 섬을 보며 관광객들에게 점령된 이 섬들의 상실된 매력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리고 베니스 인들의 화려한 공동묘지인 산 미켈레 섬에서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한다. 

이렇듯 저자의 여행기는 이탈리아를 처음 가는 여행자보다는 최소한 한 차례 이상 여행해본 자, 이탈리아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지닌 자, 다음 이탈리아 여행을 어떻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더 잘 알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여행지의 선택을 보면 이러한 성향을 알 수 있다. 

과거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인 유럽대륙,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로마 문명에 대해 알기 위해 소위 ‘그랜드 투어’라 하여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4개 도시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를 방문하였다. 

요즈음의 여행자들 역시 이들 도시들을 주로 방문한다. 물론, 나폴리 대신 남부투어로 폼페이가 붙어 있거나, 교통편의상 밀라노가 붙어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저자 역시 이들 여행지도 방문하였지만, 그 비중은 다른 소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일찍이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프랑스의 대부분의 모습을 하나의 도시 안에 갖춘 파리와는 달리, 이탈리아는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중앙집권화가 된 나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방의 특색이 가장 잘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적어도 이탈리아라면, 대도시 몇 군데가 아닌 다양한 중소도시들을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최근 많은 이들이 저자가 가본 시에나, 베로나, 소렌토, 포치타노 등등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저자는 그 외에도 비첸차 (아이리스에 나와서 유명해졌다.), 볼론, 바리, 비아레조, 부세토, 시르미오네 등등 각자의 역사와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소도시들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특히 부세토는 베르디와 깊은 인연으로, 토레 델 라고는 푸치니의 이름을 딸 정도로 사연이 있는 도시기 때문에 저자는 여행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다소 개인적이고, 어찌보면 매니아적인 선택이지만, 그가 쓴 여행기인데, 당연한 권리 아니겠는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책은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책이 아니다. 

음악 애호가이자 오페라 평론가인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탈리아, 저자의 사심이 가득한 이탈리아이다. 

하지만, 그만큼 개성있는 시각과 이탈리아의 또 하나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고, 동시에 나 역시 저자처럼 뚜렷한 자의식으로 여행지를 바라보고,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볼만한 책이다.

박종호, 황홀한여행, 풍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