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23살에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쓴 후, '우리는 사랑일까?' 와 '너를 사랑한다는 건'의 2권을 이어서 발표하고, 

이른바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공전의 히트작의 작가가 된 알랭 드 보통. 

이후에도 '불안', '여행의 기술', '일의 슬픔과 기쁨', '히드로공항에서 일주일을' 등등의 다양한 에세이집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그만의 관찰력과 표현으로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에 본 소설은 1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후속작인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소설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후기작들에 비해 다소 장황한 부분이 있다.

특히, 작가의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든 소설 속에 녹여 넣으려고 하다보니

너무 많은 언급과 비유가 난무하여

오히려 독자에게 책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만큼 작가 본연의 모습과 생각을 보여주는 원석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다.

책 제목인 '우리는 사랑일까?' 라는 의문이 참 인상적이다. 

그만큼 이 질문은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남녀가 고민하며, 미혼자들은 물론 기혼자들도 -항상은 아닐지라도- 때때로 이러한 의문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고, 결혼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 즉 연애 중에 '우리는 사랑일까?' 라는 생각을 수십, 수백번은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철학적 난제들처럼, 이 물음 역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설사 어느 순간에는 '긴 시간 끝에 드디어 진정한 사랑을 찾았어!' 라고 생각한 사람도 어느 시점에는 상대의 언행에 실망하거나, 정말 자신과 맞는 사람인지를 고민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청첩장이 나오거나,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헤어지는 커플들도 있지 않은가! 

결혼 후에도 물론이거니와 말이다.

보통은 우리에게 이 의문에 대해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앨리스라는 런던에 거주하는 24세의 싱글 커리어우먼의 연애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는 사랑일까?' 에 대한 해답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준다. 

무조건 고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흥미를 느끼면서 따라가게 해준다. 

단, 앞서 언급하였듯이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자의 지나침 때문인지 아니면 필자의 이해능력의 부족인지. 

간혹 소설치고는 난해한 비유나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책에 있는 보통의 표현대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철학서는 웬지 고급지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이 책 자체에게도 적용되지 않나 싶다.

 

책의 줄거리는 다소 뻔하다.

런던에서 홀로 직장을 구해 살아가는 앨리스는 오랜 솔로 생활로 - 개인적으로 이 오랜 솔로 생활은 서양인들 기준인 것 같다. - 외롭고, 가족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파티에서 우연히 에릭이라는 31세?의 남성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즐기고,갈등하고, 고민하다 헤어지는 과정. 

어떻게 보면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이 겪어보았던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조금은 심각한 주제를 가미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할까?

아마 영화로 나왔으면 중간 정도는 갈 것이다.

하지만, 책에 나와있는 주인공 앨리스의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은 영화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그래서 이 책이 영화보다 대단한 것이다. 

그녀의 고민과 생각, 즉 보통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시각이 책으로 반영되고 있고, 이 것이 평균 수준의 로맨틱 코메디 영화 시나리오를 꽤 읽을만한, 그리고 생각해볼만한 책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녀가 에릭을 만나자마자 불타는 밤을 보낸다.

어찌보면 그녀의 주변 상황이 이를 더 용이하게 했을 수도 있다.

물론, 에릭이란 남성의 능숙한 작업능력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녀는 그와의 충동적인 밤 이후, 그와 만나면서 점차 그에게 빠진다.

 

한가지 유쾌한 것은 보통의 자율판단과 모방심리라는 개념이다.

즉, 앨리스가 에릭을 선택한 자신에게 확신을 가진 것은 역설적으로 에릭을 만난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곳으로 데려가주고, 다른 매력적인 여성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였다. 

 

즉,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남자가 내 남자인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기꺼이 연애를 지속한 것이다.

물론 연애의 태도 역시 '남들이 인정하는 내 남자이니 나보다 우월할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그가 주도권을 쥐게 놔둔다.

보통은 이를 자율판단 vs 모방심리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자율판단은 레스토랑의 겉모습과는 달리 '음식이 내 입맛에 맞으니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네'라는 것이고, 모방심리는 '다들 그렇다니까 여긴 훌륭한 레스토랑일꺼야'라는 심리이다.

전자는 자신이 대상을 바라보고 결정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외부의 평가를 빌려, 대상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아마 대한민국처럼 이러한 '모방심리'가 강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맛집'이라고 조금만 유명하면 모두가 가봐야하고, 내가 원하는 '학과'보다 '서울대'를 원하는 것도 궁극적인 모방심리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우리의 어두운 현대사를 힘겹게 견뎌내면서 '모난 돌을 정을 맞는다'는 대다수 시민들의 잠재의식 형성, 그리고 남들과 다른 존재이면 큰 일난다는 불안감 등도 작용했을 것이다.

 

앨리스의 상황 그리고 그녀의 배경(?)을 봐도 그녀가 모방심리에 좌우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그녀는 암울했던 솔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엄격하고 능력있는 아버지는 너무 바뻐서 그녀의 옆에 있어주지 못하였고,

3번째 남편과 사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어머니가 바라보는 앨리스' 로만 보며 끊임없이 요구를 한다.

그녀가 어머니의 요구에 부응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파티에 참석하면 어머니는 그녀를 살뜰히 대해주었다.

언니 역시 봉사라는 고귀한 일 -그 때문에 불평도 할 수 없는-에 지쳐 앨리스에게 감정적 지지를 하기 어려웠으며,

룸메이트이자 베스트 프렌즈인 수지 역시 의사 남자친구와의 연애로 앨리스에게 전력을 쏟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찰나에 나타난 에릭은 그녀에게 구세주처럼 느껴지고, 우월감을 가진 존재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는 에릭의 무신경성+스스로의 남성적 우월감, 원숙한 나이, 높은 사회적 지위 등과 결합하여 처음에는 앨리스가 '존경할만한'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치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사랑받기 위해 행동한 것도 어찌보면 과거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신이 '잘'했을 때만 관심을 받았던 과거의 경험에 기인하여 에릭에게도 똑같이 행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반복강박이랄까?

 

그러나 바베이도스에서의 휴가 이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필립이라는 자신에게 공감을 해주고, 자신에게 말을 더 하게 해주는 남자를 만난 이후

에릭에 대한 이상화는 끝이나고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어찌보면 필립의 존재가 에릭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끝은 그녀가 에릭과 헤어진 후, 

얼마지나지 않아 필립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며 끝을 낸다.

마치 전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해피엔딩일지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일지 헷갈리게 하면서...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주제와 줄거리의 이 소설을 살려주는 것은 보통의 탁월한 심리적 묘사와 이를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이다. 

'오 나도 저런 적 있어, 맞어 저럴 때는 저렇게 생각하지.' 등 따위의 반응은 결국 독자에게 소설에 몰두하게 해준다. 

그리고 전작에서는 남성인 '나' 이번작에서는 여성인 '엘리스'의 시점. 즉 남성과 여성의 시점에서 연애사를 바라봄으로서 성별에 따른 생각의 차이 등을 보여준다.

특히, 엘리스의 사랑에 대한 고민, 갈등, 행동, 태도 등은 여성에게는 부분적인 공감을 남성에게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면이 클 것이다.

전반적으로 연인이라면, 특히 어린시절의 재미있고 알콩달콩한 연애가 아닌, 정말 진실한 사랑 (혹은 결혼)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전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함께'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 과정에서 전작의 주인공인 나와 '클로이'의 사랑이야기, 이번 작인 '엘리스'와 '에릭'의 연애사, 그리고 '나'와 '앨리스'가 고민한 사랑과 연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p,s 재미있는 것은 전작에서는 클로이가 보통의 친구인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나'와 헤어지고, 이번작에서는 엘리스가 다른 남자를 만나며 헤어진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새로운 연애의 시작을 의미하면서 끝나기도 하고;;

휴가지로 바베이도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비트켄슈타인의 철학이 비유로서 등장하기도 하고...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지명이나 인명이 등장하는 것이 요즘에는 반가울 정도이다.

알랭드보통, 우리는사랑일까, 알렝드보통, 알랭드보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