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 살던 13살 소년 터너는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메인주의 핍스버그에 와서 살게 됩니다. 처음부터 손을 내밀어주지 않던 사람들, 하얀 옷을 입고, 목사의 아들답게 행동하길 바라는 엄격한 눈길 그리고 아들의 말보단 다른 사람들의 말로 아들을 판단하고 손찌검까지 하던 목사인 아버지. 어디론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만 싶어하던 터너에게 말라가 섬의 리지는 삶의 활력이자 배움터가 되어줍니다. 야구하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도 모두 리지를 통해 배우게 되죠. 그리고 다친 리지를 배에 태우고 바다를 헤매다 만나게 되는 고래의 눈... 숨이 멎는듯 합니다.

 

마을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한데 뭉치고, 흑인에 대한 차별과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한데 묶어주길 바라던 목사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목소리를 내자 예배까지도 보이콧하는 등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힘없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섬을 빼앗는 것도 서슴치 않고, 친부모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기까지 하죠. 떠나지 못한 힘없는 소녀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하고요.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실제 말라가 섬에서 사람들이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는 마지막 작가의 글을 읽고 정말 마음이 안좋더라구요. 메인 주는 키 크고 수수한 새라의 바다빛 고운 고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잔혹한 역사가 어려있는 곳이었다니요. 다시 생각해보니 지역 경제가 붕괴된 농촌에서 이들 또한 자신보다 더 못한 상황의 사람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만큼 눈 앞의 경제적 이득이 절박하게 느껴진 걸 수도 있겠구요. 

 

전에 읽은 수요일의 전쟁에선 세익스피어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돋보였다면 이번엔 성경과 베르길리우스와 찰스 다윈이 그 매체가 되었나봅니다. 책이 새로운 측면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불씨가 되어준다는 것... 처음엔 대립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결국 같은 방향을 보며 용감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책의 힘이었을 수 있단 생각이 듭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종의 기원'을 건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를 보며 사랑하고 떠나보내는 큰 인생의 순환을 배우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듬직한 아들 노릇을 하고, 집잃은 허드씨네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며 목사라는 아들의 자리가 버거워 떠나고만 싶어했던 터너가 어느새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터너가 리지를 만나 본 세상이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를 거란 생각에 우리 인생에서 의미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냥 성장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아픈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