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열 두살이 되는 큰 언니 델핀은 두 동생을 데리고 난생 처음 비행기에 오릅니다. 버리고 떠난 엄마와 한 달을 함께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지요. 근데 엄마가 보통 엄마와는 많이 다르십니다. 공항에서부터 석연치 않더니 급기야 저녁도 애들보고 나가 사오라고 하고, 다음 날 아침엔 흑표범단 캠프에 가서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당혹스럽다 못해 불편했습니다. 정말 세실이 엄마맞나 싶고 차라리 모르고 사는게 낫겠다 싶었어요.

 

점점 읽어가면서 세실이 왜 세실이 아닌 엔질라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지 알게 되자, 또 다른 엄마 잃은 아이, 험한 세상에서 시를 의지하며 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롭게 살고자 떠나버린 세실이 그려지더라구요.

 

세실의 시를 읽으면서, 보호해줄 '엄마'를 잃은 건 델핀과 동생들이나 세실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산 모든 흑인들의 처지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시대의 아픔으로 전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었을 남부에서 서로를 보듬어 안고 서로 돕고 아이들과 주변의 의식을 계몽하기위해 애쓰는 흑표범단의 투쟁이 대단하게 느껴졌고요. 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책을 보며 흑표범단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비폭력 운동과는 대립각을 세우던 말콤 엑스와 같은 선상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겁고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말랑말랑한 유머스러운 장면들을 넣어둔 작가님의 내공도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책 속에서 만난 흑인들이 커다란 퍼즐판 위의 조각처럼 맞춰지는 듯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