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리젤, 귀여운 반항아 루디, 속깊고 용기있는 한스, 투박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로사, 시대의 아픔을 견뎌낸 막스, 리젤의 상처과 아픔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듬어준 일자..

막스가 한 말이었죠. "living was living. The price was guilt and shame." 비단 막스 뿐이 아니죠. 두 번이나 전쟁터에서 죽음을 면한 한스도, 동생은 죽고 혼자 살아돌아온 군인인 형도, 아들 대신 살아남은 루디아빠, 모두 살아남은 자의 진한 아픔과 죄책감이 아리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말과 글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히틀러가 words를 통해 독일을 통치했던 시절, 리젤은 words를 훔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통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words의 파괴력을 깨닫고 힘들어하죠.

"I have hated the words and I have loved them, and I hope I have made them right."

그러나 리젤을 구한 것 역시 words였습니다. 히틀러의 책에 하얀 페인트를 칠해 그 위에 리젤을 위한 책을 만들었던 막스, 그 모습이 다시 떠오르네요. 공습이 있던 날, 방공호에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리젤의 모습도요.  

마지막으로 그 힘든 시절을 살아야했던 독일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요. 모든 사람들이 히틀러에 동조했던 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대인 친구와 이웃들을 지키려고 애를 썼구요. 배고픔에 지쳐 행진하는 유대인에게 얼마 안되는 빵을 건낼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내기도 했어요. 한스는 누구보다 용기있는 사람이었고,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디 아들의 말이 큰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죽음'이라는 화자의 시선이 새로웠고, 가끔씩 '죽음'이 던지는 유머에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줄어드는 책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흡인력이 있고 또 진한 감동을 주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룬 시대가 시대여서 그런지, 렉사일지수보다는 읽는데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좀더 내공을 쌓은 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