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어디 흔한 것이 책뿐이랴! 각종 전시회, 공연, 시청자료, 컴퓨터게임 등 보고 느낄 것이 많고도 많다. 그러다보니 정작 그 어느 것도 안타깝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게 마련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이 귀하던 시절, 아무나 책을 읽을 수 없었던 시절 이야기를 해주면 어떠할까? 좀 어렵지만 책이 이렇게 많아졌기에 누구나 원하는 지식을 얻어서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면 오죽 좋을까?
  바로 이런 고민에 답해줄 수 있는 귀한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으로 작가는 조선말 천주학이란 이름으로 천주교와 서양의 정신들이 들어오던 시기를 택했다. 새로운 학문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지식에 대한 신분적 금기가 풀리려고 하던 시기이다. 그러니 민초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뜻있는 양반들도 마음이 동했던 역동적인 시기이다.
   이 시기를 우리에게 알려줄 주인공 ‘문장’을 필사쟁이의 아들로 둔 것도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다. 낮은 신분으로서 책에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바로 책을 베끼고, 그 책을 날라다주는 시중을 하는 필사쟁이 아들이며 책방주인의 양아들인 것이다.
  천주학박해사건과 얽혀서 책이 어려울 듯 여겨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끝까지 그저 장이의 눈으로만 그 시대를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이 소중하고, 귀했던 그 시절. 모두가 책을 기다리고, 때론 위험을 감수하고 책을 소장하고 책을 돌려보던 그 마음만은 어린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만하다. 

  동양화 전공자가 그린 일러스트도 책의 분위기를 돋우는데 한 몫 한다. 오얏나무 흰 꽃이 달빛에 더욱 희게 빛나는 밤, 정자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앉아 이야기 마당을 펼치는 장면의 그림은 특히 아름답다. 이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신분을 초월해서 모두가 둥그렇게 앉아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 다음날 모두가 잡혀가거나 숨거나 하며 뿔뿔히 흩어져 박해를 받지만... 그 밤의 기억으로 그들은 행복했었으리라.
  우리 아이들도 책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되고, 책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친구를 만나기를 바래본다.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p.78 홍 교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