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동반한 스릴로 느껴진다. 내가 본 스파이가 모두 영화 속의 인물이어서 그럴 것이고 그래서 스파이가 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진짜 사람이라는 생각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이 책 속에서 진짜 우리들 속에 숨어있던 스파이들을 만났다.

  마르쿠스 볼프라는 독일정보국을 이끈 스파이의 탄생이 책의 1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마르쿠스 볼프의 활약상을 전기형태로 써내려갈 심산인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러기에는 마르쿠스 볼프에 관한 개인적인 정보가 너무 부족했던 듯 하다.

  책은 마르쿠스 볼프가 심었던 스파이들의 활약상과 마르쿠스 볼프가 그들에게 어떤 지령을 내렸으며 어떤 작전으로 정보를 빼내게 했는가 등등이 대부분이다. 마르쿠스 볼프가 당시 스파이계의 발상을 뒤집어 생각해 만들어낸 로미오작전에 대해서 특히 상세하게 서술하는데, 로미오 작전이란 정보를 빼낼 수 있는 고위계층의 여비서에게 매력적인 남자애인을 스파이로 파견하는 작전이다. 로미오로 활동한 여러 명의 스파이와 그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다음은 정치계에 몇십년이나 숨어서 스파이 생활을 한 슈퍼스파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귄터 기욤이란 사나이로 빌리브란트 총리의 보좌관을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각국의 정보기관들 사이를 오가는 이중의 스파이, 삼중의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에서처럼 스파이들 대부분은 모두가 명석하며, 처세에 능하고, 여자를 좋아한다. 그들을 스파이로 만든 것은 이념, 돈, 여자, 가족 등등이다. 특이하게 이 모든 것을 제외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이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이도 있었다. 스파이 세계의 배신과 불신, 등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흥미롭지만 이 모든 일화들이 단편적인 것들이어서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해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저자는 사실로 밝혀진 부분에 의지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스파이들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휘한 인물 마르쿠스 볼프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르쿠스 볼프의 이야기로 집중되기 보다는 각각의 일화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구하기 어려운 많은 자료들에 비하면 좀 안타까운 구석이다. 그래서 007 영화처럼 재미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박진감의 지속이 덜하다.